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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수가 시험을 당하고 기적을 행한 땅: [유럽문명의 원류 이스라엘 이집트 여행기 ⑭] 제 작성자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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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가 시험을 당하고 기적을 행한 땅: [유럽문명의 원류 이스라엘 이집트 여행기 ⑭] 제
 

예수가 시험을 당하고 기적을 행한 땅

[유럽문명의 원류 이스라엘 이집트 여행기 ⑭] 제리코
13.02.19 09:21l최종 업데이트 13.02.19 09:21l
텔 제리코는 왕의 언덕이라는 뜻이다

 텔 제리코 안내도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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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 제리코의 역사를 알기 위해 현지에 도착한 우리는 먼저 15분 정도 영상물을 본다. 이 영상물은 텔 제리코 발굴 결과를 토대로, 이곳에 살던 최초 문명인들의 자취를 소개하고 있다. 그 역사는 기원전 9000년 신석기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들은 엘리사(Elisha)샘 주변에 살며 사냥과 경작을 통해 생계를 유지했다. 그들은 진흙과 밀짚을 섞어 흙벽돌을 만들어 집을 짓고 살았다. 집의 크기는 가로 세로 5m 정도고, 지붕에는 짚을 이었다.

발굴을 통해 70여 채 정도의 집이 확인되었다. 당시 텔 제리코를 중심으로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2000~3000명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텔 제리코에서는 높이 3.6m 정도의 성벽이 확인되며, 성벽 안에 의식용으로 사용되는 탑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들 성벽은 외적에 대한 방어용이기 보다는 우기에 불어나는 물을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여겨진다.

 텔 제리코 너머로 시험산이 보인다.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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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6800년경에는 외적의 침입이 있었고, 그들은 현지인들의 문화를 수용해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냈다. 당시 유물로는 인골이나 초상화 같은 것이 있다. 텔 제리코의 전성기는 대개 기원전 1700년경의 청동기시대로 보고 있다. 이때 성벽이 확장되고 강화되었으나, 1530년경 다시 파괴된 것으로 보인다. 그 후 텔 제리코는 버려졌고, 9세기 경 엘리사 샘 주변으로 현재의 제리코가 자리 잡게 되었다. 텔 제리코의 발굴을 주도한 것은 로마의 사피엔짜(Sapienza)대학교 고고학팀이다.

이 영상물을 보고나서 우리는 텔 제리코 언덕으로 올라간다. 올라가면서 보니 왼쪽으로 시험산이, 오른쪽으로 제리코시가 잘 보인다. 제리코의 또 다른 이름이 종려나무(Palm tree) 도시여서 그런지 주변에 종려나무가 많다. 현재 제리코에 사는 사람은 2만 명쯤 된다. 텔 제리코의 흙은 척박한 황토 계열이다. 이 지역은 비가 적기 때문에 엘리사 샘물을 이용해 농사를 짓고, 텔 제리코 지역은 지대가 높아 주거지로 사용했던 것 같다.

 텔제리코의 성벽과 방어진지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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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 제리코 정상에 올라간 우리는 가이드로부터 다시 간단하게 제리코의 역사에 대해 설명을 듣는다. 그리고 발굴지를 찾아다니며, 과거의 역사를 확인한다. 발굴지 주변에는 에어리어(Area)와 트렌치(Trench)로 나눠 안내판을 붙여 놓았다. 그 중 관심이 가는 지역이 에어리어 A, C, G이다. A, C 지역에는 청동기시대 성벽과 방어진지가 있다. 그곳에서는 돌과 벽돌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다.

마치 우리네 담벼락처럼 벽돌을 차곡차곡 쌓아올렸고, 그 위에 돌을 얹어 쉽게 훼손되는 것을 막았다. 트렌치 III는 신석기시대부터 철기시대까지 모두 아홉 부분의 토층이 나타난 곳이다. 이 토층은 기원전 10000년 전부터 600년경까지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안내판에는 초기 신석기시대부터 철기시대까지, 최상층에는 로마시대 토층까지 보여주는 그림이 있다. 그렇지만 전문가나 그 토층을 구분할 수 있지, 보통사람들은 '그런가벼' 수준이다.

시험산 수도원 찾아가는 길

 시험산으로 올라가는 케이블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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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 제리코 답사를 마친 우리는 시험산(Mount of Temptation)으로 올라간다. 시험산으로 올라가기 위해서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걸어 올라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케이블카를 타는 것이다. 우리는 편안하고 빠른 케이블카를 탄다. 케이블카 승강장은 텔 제리코 아래, 엘리사샘 바로 옆에 있다. 이곳에서 시험산 중턱의 승강장까지는 케이블로 1330m이고, 시간은 5분 정도 걸린다.

12대의 케이블카가 있으며, 승객이 있을 때 운행한다. 케이블카 한 대에 탑승할 수 있는 인원은 8명이다. 케이블카가 출발하면 아래로 종려나무, 올리브, 향나무 등으로 이루어진 오아시스가 보인다. 그런데 중간에 케이블카가 잠시 쉰다. 그것은 멈춰서 위로 시험산과 수도원, 아래로 제리코시를 한 번 조망하라는 배려다. 케이블카가 쉴 때는 반대편에서 내려오는 케이블카도 함께 쉬기 때문에 멀리서 보기에도 멋진 장면이 된다.

 시험산에서 바라 본 제리코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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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산 중턱 정거장에 내린 우리는 잠시 아래로 펼쳐진 제리코시를 조망한다. 시험산에서 제리코시로 이어지는 와디도 보인다. 그리고 와디 옆으로는 나무와 식물이 자라는 오아시스 농장들을 볼 수 있다. 제리코는 정말 광야 또는 사막 속의 오아시스 도시다. 이곳에서 우리는 시험산 수도원으로 향한다. 연로한 회원들 서너 분은 정거장 옆 술탄 레스토랑에서 쉬기로 한다.

정거장에서 수도원으로 가는 길은 절벽을 깎아 계단식으로 만들었다. 중간에 한 무리의 사람들을 만난다. 루마니아에서 온 정교회 신자들이다. 이들은 이곳 수도원에 참배하러 가는 사람들이다. 우리들은 안도의 한숨을 쉰다. 그들 덕에 우리가 수도원에 들어갈 확률이 100%로 높아졌기 때문이다. 수도원까지 올라가 들어가지 못하고 내려온 사람들이 꽤나 많다고 한다.

예수가 유혹을 받고 시험을 당한 현장을 보다

 시험산 수도원의 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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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 입구에 도착하니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수도사의 모습이 보인다. 문 위에는 1899라는 글자가 보인다. 현재 수도원이 1899년에 지어진 모양이다. 안에는 절벽을 따라 굴을 파고 방을 만들었고, 절벽 밖으로 벽돌을 쌓아 건물을 지었다. 그런데 이곳에 수도시설이 되어 있다. 신기해서 우리는 그곳에서 손을 씻어 마음을 정결히 한다.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니 디미트리우 키리아치(ΔΗΜΗΤΗΡΙΟΥ ΚΥΡΙΑΖΗ)를 기리는 그리스어 명판이 붙어 있다.

이 수도원은 그리스정교에서 운영하는 수도원으로, 그리스어 명칭은 Μοναστήρι του Πειρασμού 아랍어 명칭은 Deir al-Quruntal이다. 모두 시험산 수도원이라는 뜻이다. 전승에 의하면 예수가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은 다음, 광야로 나가 유혹과 시련을 견디며 40일 밤낮을 보냈다고 한다. 그리고 이곳 시험산에서 악마의 시험을 받게 되었다.

 수도원 경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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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산 수도원은 크게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수도원 경당이 있고, 예수가 시험을 받은 작은 경당이 있고, 동굴 경당이 있다. 수도원 경당은 이곳을 찾는 기독교 신자들이 미사를 드리는 곳이다. 수도원 경당 옆으로는 동굴이 있고, 이곳에 동굴 경당이 있다. 수도원 경당을 지나 더 올라가면 예수가 시험을 받은 경당이 있다. 그곳에는 예수가 시험을 받았던 돌덩어리가 있고, 그 위에 예수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예수가 광야에서 유혹을 받은 이야기는 '마태오 복음' 4장 1-11절에 잘 나타나 있다. 여기서 유혹과 시험은 같은 뜻으로 쓰였다.

 예수 시험 경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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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에 예수께서 성령의 인도로 광야에 나가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사십 주야를 단식하시고 나서 몹시 시장하셨을 때, 유혹하는 자가 와서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더러 빵이 되라고 해 보시오'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는 성서에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리라'고 하지 않았느냐고 대답하셨다."

결국 예수는 악마를 물리치고, 천사들의 시중을 받는다. 그렇다면 이곳에 있는 돌덩어리가 정말 유혹을 받은 그 돌덩어리일까? 이곳이 유혹의 산 또는 시험산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어머니 성녀 헬레나가 326년 기독교 성지를 순례하면서 유혹의 장소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 후 6세기 경 이곳에 수도원이 세워졌고, 1099년 십자군 원정 후 두 개의 교회가 다시 세워졌다. 하나는 현 수도원 자리에 그리고 다른 하나는 산 정상에.

 시험산의 동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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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1874년 그리스 정교에서 다시 수도원 건축을 시작했고 1895년에 완성되었다. 그들은 예수 시험 경당에 있는 돌을, 예수가 앉아서 시험을 받았던 돌덩어리로 생각하고 있다. 그리스 정교회는 이곳에 수도원을 지으며 시험산 정상에도 수도원을 지으려 했으나 그 시도는 아직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산 정상에는 기원전 마케도니아 왕조에 의해 세워진 성벽의 일부가 남아 있다. 그 성벽은 멀리서도 볼 수 있다.

우리는 수도원 경당을 보고 잠시 밖으로 나가 본다. 테라스 형태로 공간을 만들고 거기에 스텐레스로 난간을 세웠다. 바닥을 밟고 있으니 땅이지, 이건 공중이나 마찬가지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머리가 쭈삣 선다. 계곡 건너편 산의 절벽 사이로 동굴들이 보인다. 아마도 예수처럼 유혹과 시련을 견뎌보려는 사람들이 굴을 파고 수도한 곳으로 보인다. 아니면 기독교 박해를 피해 이곳에 살았던 사람의 흔적일 수도 있다.   

제리코에서 기적을 행한 예수 이야기

 시험산 수도원에서 내려다 본 제리코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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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갔던 길을 돌아 다시 케이블카 정거장으로 간다. 그곳 술탄 레스토랑에서 아랍식 커피를 마시며 잠시 휴식을 취한다. 아랍식 커피가 조금은 텁텁한 듯하지만 맛을 볼수록 원래 커피맛이 이랬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좀 더 원초적이기 때문이다. 얼마 후 우리는 케이블카를 타고 처음 출발했던 제리코 정거장으로 내려간다. 이곳에서 잠시 엘리사 샘을 살펴본다. 이 샘이 바로 제리코시의 젖줄이다.

제리코는 또한 예수가 기적을 행한 도시로도 유명하다.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의 기적은 35회에 이른다. 이들 기적은 예수가 복음을 전하며 이루어진다. 이러한 기적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따르고 기독교를 믿게 된다. 기적은 갈릴리 호숫가에서 가장 많이 일어난다. 그것은 예수가 갈릴 호수 주변에서 주로 포교를 했기 때문이다.

 오아시스 도시 제리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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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로 보면 가버나움(Capernaum)이 가장 많고, 벳사이다(Bethsaida)가 두 번째다. 세 번째로 많은 곳은 예루살렘이고 나머지는 한두 번씩이다. 그 중 제리코에서도 예수는 눈먼 거지의 눈을 뜨게 하는 기적을 행한다. 제목은 '예리고의 소경'(루가복음 18장 35-43절)이다. 제리코가 영어식 표현이라면, 예리고 또는 여리고는 히브리식 표현이다. 그렇지만 이곳에 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곳을 야리하라고 부른다. 여행을 하다 보면 이 지명 표기가 항상 문제다.

"예수께서 예리고에 가셨을 때의 일이었다. 어떤 소경이 길거리에 앉아 구걸하고 있다가, 예수께서 지나가신다고 하자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예수께서는 걸음을 멈추시고 그 소경을 데려오라고 하셨다. 소경이 가까이 오자 '나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하고 물으셨다. '주님,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하고 그가 대답했다. 예수께서 '자, 눈을 떠라.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그 소경은 곧 보게 되어 하느님께 감사하며 예수를 따랐다."

 호텔에서 바라 본 제리코시의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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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기적을 생각하며 나는 버스에 오른다. 버스는 잠시 후 제리코 남쪽에 있는 인터 콘티넨탈 호텔로 우릴 데려다 준다. 해가 벌써 서쪽으로 많이 기울었다. 서쪽으로는 와디 켈트가 펼쳐져 있다. 황량한 광야다. 우리는 예수처럼 황량한 땅 유다광야를 지나 오아시스 도시 제리코에서 하루를 묵게 된다. 호텔에는 성지순례를 온 한국인 가톨릭 신자들이 보인다. 그들은 모세의 출애굽기를 따라 새벽에 시나이산에 올랐다 제리코까지 온 열렬한 신자들이다. 그들에게 하느님의 은총과 예수님의 사랑이 있기를 빈다.

물 물 물, 그것은 생존의 필수조건이다: [유럽문명의 원류 이스라엘 이집트 여행기 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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