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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수 잉태 알린 가톨릭성지, 이슬람교도가 더 많다: [유럽문명의 원류 이스라엘 이집트 여 작성자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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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잉태 알린 가톨릭성지, 이슬람교도가 더 많다: [유럽문명의 원류 이스라엘 이집트 여
 
이스라엘 평원을 지나 나사렛으로

 공원에서 본 수태고지 교회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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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사리아에서 나사렛으로 가려면 65번 고속도로를 타는 게 좋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남쪽 하데라(Hadera)로 내려간 다음 동북쪽으로 방향을 틀어 완만하게 올라가야 한다. 그것은 나사렛이 해발이 비교적 높은 산지에 있기 때문이다. 중간에 우리는 므깃도(Megiddo)와 아풀라(Afula)를 지나간다. 므깃도와 아풀라는 이스라엘 평원 지역으로 넓은 들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곡창 역할을 하고 있다.

아풀라를 지나자 왼쪽으로 하얀 절벽산이 보이고 오른쪽으로 바가지를 덮어놓은 것 같은 둥근 타보르(Tavor) 산이 보인다. 절벽산을 넘어 우리는 산 위에 자리 잡은 나사렛으로 간다. 우리가 찾아가는 곳은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잉태를 알려준 자리에 세워진 수태고지 교회다. 차에서 내리니 수태고지 교회의 외관이 보인다. 그런데 그 앞 공원에 아랍어로 쓰인 큰 글자가 눈에 들어온다. 정수일 소장에게 그 내용을 물어보니 '알라 사자(使者) 무함마드'의 세 글자라고 한다. 이것을 풀이하면 무함마드는 알라가 보낸 사람이라는 뜻이다.

 나사렛 지방의 생활용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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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나사렛은 기독교의 성지지만, 현재 이슬람교도가 더 많이 살고 있다. 자료를 보니 전체 인구 8만 명 중 이슬람교도가 69%고 기독교도가 31%다. 우리는 Holy Land 식당으로 들어가 점심을 먹는다. 그곳에는 갈릴리와 나사렛 지방에서 사용하던 농기구와 생활용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하나하나 살펴보니 우리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고 보니 이 지방이 옛날 유럽 사람들에 의해 소아시아로 불렸던 지역이다. 또 나사렛은 이스라엘 내의 아랍 수도로 여겨진다.  

수태고지 교회에서 만난 각국의 성모자상

 수태고지 교회의 청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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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후 우리는 수태고지 교회로 간다. 입구가 공원 쪽에서 보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철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니 벽면에 새겨진 부조가 보인다. 벽 꼭대기에 하느님이 보이고 그 아래로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예수의 잉태를 알린다. 더 아래에는 복음사가인 마태오, 마르코, 루가, 요한이 그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그 아래 교회 정문은 6개의 조각이 있는 청동문이다. 조각의 내용을 보니 예수가 태어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때까지의 과정이다.

우리는 교회 안으로 들어가기 전, 교회를 둘러싸고 있는 회랑에 붙여진 성모자상 그림을 본다. 이들 성모자상은 세계 각국의 의상을 입은 모습으로 그려져 있어, 종교적 가치뿐 아니라 예술적 가치도 지니고 있다. 이들 그림을 보면, 한눈에도 어느 나라인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문에서 순서대로 성모자상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한국의 성모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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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성모자상은 강렬하고 화려하다. 우크라이나의 성모자상은 확실히 동방정교적이다. 바티칸에서 보낸 것도 있는데 교황 바오로 6세가 천사와 예수 그리고 마리아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스페인의 그림은 상당히 현대적이다.

이곳에는 중국과 태국 등 동남아 국가의 성모자상도 걸려 있다. 중국 그림에는 신선풍으로 중화성모위아등기(中華聖母爲我等祈)라고 적혀 있다. 우리나라에서 보낸 그림도 걸려있는데, 옥색 한복을 입은 마리아와 색동옷을 입은 아기 예수가 인상적이다. 이 그림은 스테인드글라스를 전공한 이남규 화백이 그린 것이라고 한다.

수태고지 교회의 역사

 수태고지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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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성모자상을 보고 나서 아내와 나는 교회 안으로 들어간다. 수태고지 교회는 성모 마리아가 천사 가브리엘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잉태를 알린 자리에 세워져 있다. 그러나 이 교회가 처음부터 지금의 모습을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지금의 교회가 세워진 것은 1969년이기 때문이다. 그럼 초장기의 모습은 어땠을까? 그리고 그 교회의 역사는 어떻게 될까?

수태고지 교회가 처음 세워진 것은 4세기 중반이다. 마리아가 살았던 동굴에 제단을 갖춘 정도였다. 이것이 콘스탄티누스 대제에 의해 좀 더 큰 구조물이 갖춰진 교회로 발전했을 것이다. 당시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어머니인 헬레나로 하여금 거의 동시에 수태고지 교회, 예수 탄생교회, 성묘 교회를 짓도록 했다. 그리고 그 교회는 570년경까지 존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1870년경의 수태고지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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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7세기 이슬람교의 전파와 함께 파괴되었고, 십자군에 의해 나사렛이 수복되는 1102년 이후 다시 세워지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1187년 십자군이 술탄 살라딘(Saladin)군에 패해 철수했기 때문에 교회는 완성되지 못했다. 1260년에는 이집트의 술탄인 바이바스(Baybars)에 의해 그것마저 파괴되었다. 그럼에도 프란시스코 수도회 신부들이 이곳을 드나들며 활동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들 중 일부가 1542년 죽음을 당하기도 했지만, 기독교인들이 프란시스코 수도회의 지원을 받으며 교회를 계속 유지했다고 한다.

프란시스코 수도회 수사들이 다시 돌아온 것은 1620년이다. 그들은 마리아의 집으로 통하는 성스러운 동굴에 다시 작은 구조물을 지었고, 1730년 갈릴리 지역의 통치자 다헤르 엘 오마르(Daher el-Omar)의 허락을 얻어 새로운 교회를 건설할 수 있었다. 이때부터 수태고지 교회는 나사렛 기독교인들의 종교와 삶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 교회가 다시 확장된 것은 1877년이다. 그러나 이것도 부족해 1954년 그 건물을 헐고 새로운 교회를 지어 1969년 현재의 모습으로 완성되었다.

 수태고지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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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설계는 이탈리아 건축가 무치오(Giovanni Muzio)가 맡았고, 건축은 이스라엘 건축회사 솔렐 보네가 맡았다. 이 교회는 현재 중동지역 최대의 교회로, 프란시스코 수도회가 관리하고 있다. 1964년 교회 축성 당시 교황 바오로 6세가 참석했고, 그 때문에 바티칸에서 보낸 성모자상에 바오로 6세가 나온 것이다. 이처럼 세계적으로 의미있는 교회의 축성에는 교황이 참석한다.   

수태고지 교회의 안은 어떻게 되어 있을까?

 성모영보동굴의 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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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태고지 교회는 2층으로 되어 있다. 그렇지만 지하에 1층이 있다. 그것은 과거 동굴 자리에 교회를 세웠기 때문이다. 교회 안으로 들어가면 미사를 볼 수 있는 1층 공간이 나온다. 이곳을 지나 계단을 내려가면 수태고지의 현장으로 여겨지는 곳에 만들어진 성모영보 동굴을 만날 수 있다. 동굴에는 '이곳에서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Verbum Caro Hic Faktum Est)'라고 쓰인 제단이 있고, 그 위에 십자가가 모셔져 있다.

새로 교회를 지으면서 옛날 석재의 일부를 그대로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과거 비잔틴 시대부터 1800년대까지 교회의 역사적 흔적을 그대로 남겨놓은 것이다. 동굴 옆에는 수태고지를 알리는 성화가 있다. 여기서 눈을 들어 하늘을 보니 하얀 백합꽃이 피었다. 1층 천정에 광창을 냈는데, 그것을 백합꽃처럼 만들어 놓았다. 신심이 절로 우러난다.

 수태고지 교회 천정 백합꽃 모양의 광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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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을 지나면 스테인드글라스가 있는 크고 조금은 어두운 예배공간이 나타난다. 이곳 벽에는 성모자상이 조각과 그림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 중 눈에 띄는 것이 왕관을 쓴 마리아와 예수 조각상이다. 단순한 아름다움이 있다. 또 하나 중국에서 보낸 성모자 조소상이 보이는데, 색깔이 화려하고 장식이 많다. 다른 한편으로는 일본에서 보낸 모자이크 성모자가 있는데, '영화로운 성모자(華の聖母子)'라고 썼다.

이들을 보고 밖으로 나오니 다시 밝은 세속의 세계가 나타난다. 꽃들이 만발하고 야자수가 우뚝하다. 이곳을 지나 우리는 동굴로 이루어진 옛날 나사렛의 모습을 살펴본다. 과거 어렵게 살았던 사람들의 삶을 짐작하게 해준다. 이곳에서 예수는 어린 시절을 보냈고, 목수로 살았다고 한다. 마르코 복음 6장 3절에 예수가 목수이었음을 알리는 구절이 있다. 목수는 예수가 살던 시절 아주 흔한 직업이었다.

 일본풍의 성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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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사람은 그 목수가 아닌가? 그 어머니는 마리아요,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유다, 시몬이 아닌가?" 

이들 동굴 건너편으로는 현대적인 건물이 가득한 현재 나사렛의 모습이 대조적으로 보인다. 나사렛은 그동안 아랍계 이스라엘인의 중심도시가 되었고, 하얀 모스크(White Mosque) 등 수많은 이슬람 사원이 있다. 그리고 20개가 넘는 하이테크 기업이 운영되고 있다. 그렇지만 기독교 교회도 수십 개 있으며, 이들은 서로 갈등하지 않고 평화적으로 공존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유대교 국가이기는 하지만 그 뿌리가 같은 기독교, 이슬람교가 함께 잘 지내고 있다. 이들 종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적대적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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