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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분류 [2009년 겨울] 북아프리카 답사
제목 물 물 물, 그것은 생존의 필수조건이다: [유럽문명의 원류 이스라엘 이집트 여행기 ⑬] 작성자 이상기
물 물 물, 그것은 생존의 필수조건이다: [유럽문명의 원류 이스라엘 이집트 여행기 ⑬]
 
 
유다 광야의 아름다움

 예루살렘과 제리코를 연결하는 1번 고속도로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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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을 떠난 우리의 다음 행선지는 사해 북쪽에 있는 오아시스 도시 제리코(Jericho)다. 제리코로 가는 길은 올리브산을 넘어 동쪽으로 이어진다. 이 길은 1번 고속도로로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을 거쳐 제리코까지 연결된다. 예루살렘이 해발 750m 대에 있고, 제리코가 해발 -250m 대에 있으니 무려 1000m 높이를 내려가야 한다. 그러므로 길은 계속해서 내리막길이다.

예루살렘을 벗어나자 바로 황량한 광야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곳이 바로 그 유명한 유다 광야(Wilderness of Judah)다. 광야와 사막은 어떻게 다를까? 어감상 광야가 조금 더 살만한 땅으로 느껴진다. 현장을 보니 말 그대로 광야가 더 살만해 보인다. 도로도 제대로 나 있고, 차량 통행도 많고 동식물의 흔적도 보이기 때문이다. 유다 광야는 예수가 고행을 하며 시험을 당하고 또 기적을 한 곳으로 유명하다.

 유다 광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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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번 국도를 달리다 잠깐 차가 샛길로 빠진다. 표지판을 보니 세인트 조지(St. Jeorge)라고 써 있다. 현지 가이드인 이철규씨가 유다광야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로 간다고 한다. 중간 중간 베두인의 거처를 볼 수 있다. 베두인은 목축을 하며 광야에 사는 사람들이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여러 차례 돌고 돌아 차는 십자가가 보이는 산자락 아래 멈춘다. 차에서 내린 우리는 십자가를 향해 올라간다.

베두인족 어린이들이 기념품을 가지고 나타난다. 베두인들의 삶이 너무 팍팍하다 보니 그들은 이제 관광객을 상대로 한 장사를 하나 더 생업에 추가한 것이다. 어디서 가지고 왔는지 오렌지도 팔고 있다. 십자가가 있는 지점에 도착해 보니, 이곳이 유다광야를 조망할 수 있는 최고의 전망대(View Point)다. 올망졸망한 산봉우리들이 끝없이 이어진다. 그런데 그 산에는 나무가 전혀 보이질 않는다. 강수량이 적어 나무가 살 수 없는 것이다.

 골짜기로 보이는 세인트 조지 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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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돌려 골짜기(Wadi)를 살펴보니 그곳에 세인트 조지 수도원이 보인다. 골짜기로 이어진 길이 예루살렘과 제리코를 잇는 옛길이다. 옛날 사람들은 하루 40㎞ 내외를 걸었고, 그 때문에 40㎞ 정도마다 이들을 수용할 수 있는 카라반 숙소(Caravan Sarai)가 있어야 했다. 그런데 이 길은 대상(隊商)들보다는 기독교 순례자들이 많아 중간 중간 수도원들이 생긴 것이다. 또 수도를 하는 사람들은 도시나 사람들을 피해 외딴 곳에서 생활하는 것이 더 좋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래도 수도원 근방에는 야자수도 보이고 식물도 재배하고 있다. 연 강수량이 겨우 100mm에 불과하지만, 사람이 살면 자연이 저렇게 변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 가까운 언덕에는 당나귀가 뭔가를 먹고 있다. 척박한 광야에서도 식물과 동물, 그리고 사람이 살고 있었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정말 어려운 상황에서 삶을 영위하겠지만, 지나가면서 한 번 살펴보는 유다 광야는 그렇게 경건하고 아름다울 수가 없다. 자연은 역시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끼는 대상이다. 

사해에서 공중부양을 체험하다.

 해발 0m를 나타내는 표지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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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는 다시 1번 고속도로로 돌아와 사해 쪽으로 길을 재촉한다. 길을 내려가면서 보니 중간 중간 해발을 보여주는 안내판이 있다. 어느 순간 해발 0m라는 표지판이 나온다. 우리는 차를 내려 잠시 주변을 살펴보기로 한다. 영어와 히브리어와 아랍어로 Sea Level이라는 표지판과 표지석이 보인다. 그리고 주변에 기념품을 파는 상인이 있다.

나는 실크로드의 투르판에서 해수면 아래로 내려간 적이 한 번 있다. 그러므로 이번의 제리코와 사해(Dead Sea) 여행은 두 번째 해수면 이하 체험이다. 이곳에서도 황량한 유다 광야의 모습은 여전하다. 다만 사람들이 설치한 구조물과 통신안테나 등이 있어 현대문명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여기서 우리의 목적지 사해까지는 이제 20분 정도면 도달할 수 있다. 우리는 일정을 조금 바꿔 사해에 먼저 들러 해수욕을 하고 제리코로 들어가기로 한다.

 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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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해에 도착해보니 예루살렘보다 훨씬 따뜻하다. 예루살렘의 1월 평균 기온이 9℃ 정도라면, 제리코의 평균 기온은 17℃ 정도이기 때문이다. 사해의 칼리아(Kalia) 비치에 도착하니 현지시각으로 10시 15분이다. 그리고 기온도 20℃다. 우리식으로 생각하면 해수욕하기에는 좀 낮은 기온이지만 이곳은 상황이 조금 다르다. 주변의 공기가 차게 느껴지질 않아 해수욕을 할만 할뿐 아니라, 평생 한두 번 밖에 할 수 없는 체험을 놓칠 수도 없다.

사해는 해발 -427m에 위치한 바다다. 길이가 55㎞, 폭이 18㎞이고, 남북으로 길게 발달해 있다. 평균 수심은 118m이고, 가장 깊은 곳은 377m에 이른다. 북쪽의 요단강에서 물이 흘러들어오는데, 물이 흘러나가는 곳이 없어 염도는 계속 높아지고 수량이 조금씩 줄어든다. 그러므로 언젠가 사해는 소금밭으로 변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수 십 만년 후의 일이 될 것이다.

우리는 수영복으로 갈아입은 다음 사해로 들어간다. 비치로부터 물까지 500m쯤 걸어 들어가야 한다. 해수욕장처럼 주변에 방갈로도 만들어놓고 파라솔도 설치했다. 그곳에 있는 바(Bar)에는, 세상에서 가장 낮은 해발 -418m 지점에 있다는 영문 글귀가 보인다. 물가에 가까이 가니 바닥이 온통 머드(Mud)다. 사해의 머드는 화장품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 머드가 어찌나 단단한지 몸에 바르기가 쉽지 않다.

 머드가 풍부한 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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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해를 찾는 관광객들은 두 가지 부류다. 하나는 우리처럼 관광과 답사를 위한 팀이고, 다른 하나는 치료와 휴양을 위한 팀이다. 휴양과 치료 목적으로 온 사람들은 따뜻한 기온, 일광욕, 사해의 물에 함유된 광물질을 통해 그 효과를 본다고 말한다. 이들 두 가지 목적, 즉 관광과 치료를 위해 이곳 이스라엘 쪽 사해를 찾는 관광객이 연간 12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나는 아내와 함께 머드를 바르고 물속으로 들어간다. 가장 궁금한 것이 정말 몸이 물에 뜨느냐 하는 것이다. 약간의 요령을 더해 팔을 펼치니 자연스럽게 몸이 뜬다. 그러니까 배영 형태의 자세를 취하기만 하면 된다. 팔을 저으며 더 안으로 들어가 본다. 그리고 몸을 일으켜 본다. 물에 광물질이 많아선지 몸이 상당히 미끈거린다. 이 광물질 때문에 사람들이 사해에서의 해수욕을 즐기는 모양이다. 더 오래 해수욕을 즐기고 싶지만, 물에 들어오지 않은 사람들도 있어서 그렇게 오래 해수욕을 할 수는 없다.

 사해에서의 공중부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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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으로 나와 샤워를 하고 잠시 쉬면서 칼리아 비치의 자연을 즐긴다. 이곳에는 부겐빌리아, 야자나무, 용설란 등 아열대 식물이 잘 자라고 있다. 가게에서는 사해에서 생산한 소금을 팔고 있다. 가격이 만만치 않다. 가격이 이처럼 비싼 것은 다른 바다에서 생산되는 소금에 비해 소듐 클로라이드(NaCl)의 함유량이 절반 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천일염은 소튬 클로라이드의 비중이 97%나 된다. 이에 비해 사해의 소금은 마그네슘 클로라이드(MgCl2)의 비중이 가장 높아 50.8%이고, 소듐 클로라이드의 함유량이 두 번째로 높아 30.4%이다. 여기에 칼슘 클로라이드가 14.4%, 포타슘 클로라이드가 4.4% 들어 있다. 그러므로 사해의 소금은 광물질의 함유량이 대단히 높은 특수 소금이다.

쿰란과 요단강 국경지대를 가다

 쿰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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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욕을 마치고 우리는 점심을 먹으러 쿰란으로 간다. 쿰란은 1947년부터 1956년까지 10년간 사해사본이 발견된 곳으로 유명하다. 이곳에서 발견된 사본을 우리는 이미 이스라엘 박물관에서 보았다. 그 쿰란 동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식당이 있어 그곳을 찾아간 것이다. 식당에는 관광버스가 이미 여러 대 와 있고, 사람들도 꽤나 많다. 식당이 뷔페식이고, 원하는 만큼 주문을 해서 먹는 방식이다.

나와 아내는 다른 음식을 시켜 함께 먹는다. 이곳에서는 또한 맥주도 한잔씩 마신다. 식사 후 시간여유가 있지만 쿰란동굴까지 갈 수는 없다. 나는 책방에 들러 그간 구입하지 못한 이스라엘, 예수와 성서 관련 책을 두어 권 산다. 특히 마이크 보몬트(Mike Beaumont)가 쓴 <원-스톱 성서 가이드>(2009)가 마음에 든다. '신이 보낸 사랑의 편지 바이블'부터 '미래의 희망'까지, 글과 지도, 사진과 그래픽 등을 통해 성서의 역사와 인물을 아주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량이 많은 요단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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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고 우리는 요단강으로 달려간다. 요단강의 역사와 지리, 그리고 현재 상황을 느끼기 위해서다. 만약 요단강이 없었다면 신약성서는 생겨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예수의 이야기가 요단강을 따라 요단강을 중심으로 펼쳐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찾아간 곳은 세례 요한에 의해 예수의 세례식이 이루어진 카세르 엘 야후드(Qaser el Yahud 또는 Kasser al Yahud)이다. <마르코 복음> 1장 9-1절에는 당시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그 무렵에 예수께서는 갈릴리 나사렛에서 요단강으로 요한을 찾아와 세례를 받으셨다. 그리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 하늘이 갈라지며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당신에게 내려오는 것을 보셨다. 그때 하늘에서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이스라엘군이 지키고 있는 요단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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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세르 엘 야후드는 현재 사해 북쪽, 제리코 동쪽 요단강 가에 위치하고 있는 군 주둔지다. 이곳에도 역시 이스라엘 군이 지키고 있다. 우리는 그들의 검문을 통과해 요단강 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강 쪽으로 걸어간다. 강 입구에도 군인들이 있다. 그들을 지나 강변으로 가니 누런 흙탕물이 흘러내린다. 평상시 같으면 수량이 적어 강폭이 5~10m 정도라는데, 지금은 50m도 넘어 보인다. 요단강 상류에 비가 많이 왔기 때문이다.

이곳은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넜던 장소라고도 하고, 선지자 엘리야가 천국으로 올라간 장소라고도 한다. 이곳이 다시 문을 연 것은 2010년이다. 44년 동안 이곳은 들어갈 수 없는 지역이었다. 그것은 1967년 3차 중동전쟁 후 이스라엘과 요르단의 분쟁지역이었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대 이스라엘 저항운동인 인티파다(Intifada)의 일환으로 2003년 이곳에서 유혈사태가 벌어졌고, 그로 인해 개방이 더 늦어졌다고 한다.

 요단강 건너 보이는 그리스정교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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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을 타고 강 가까이 가니 건너편으로 그리스정교 교회가 보인다. 요르단 땅이지만 그곳에도 기독교 신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이곳을 넘어갈 수 없다. 단지 세례를 허가받은 사람들이 허가받은 지점에서만 의식을 거행할 수 있다. 물이 너무 탁해서인지 세례식을 거행하는 사람들을 볼 수는 없다. 우리는 아쉽지만 요단강을 떠난다.

현재 요단강 서안 제리코에서 요르단으로 넘어가는 길은 알렌비(Allenby) 다리다. 우리는 차를 돌려 제리코 시내로 향한다. 제리코는 도시의 역사가 1만2000년이나 되어, 지구상 가장 오래된 도시로 알려져 있다. 우리는 그 역사의 현장을 보기 위해 제리코 서북쪽에 있는 텔 제리코로 향한다. 여기서 텔은 언덕을, 제리코는 왕 즉 술탄을 말한다. 그러므로 텔 제리코는 왕의 언덕(Tel Es-Sultan)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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