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류합시다 [한국문명교류연구소]:::::
 
 
 
 
답사안내
답사신청
답사갤러리
답사기행문
 
  > 실크로드 답사 > 답사 기행문
답사분류 [2009년 겨울] 북아프리카 답사
제목 고고학박물관을 보지 않으면 역사를 몰라:>[유럽문명의 원류 이스라엘 이집트 여행기 ⑧] 작성자 이상기
고고학박물관을 보지 않으면 역사를 몰라:>[유럽문명의 원류 이스라엘 이집트 여행기 ⑧]
 

고고학박물관을 보지 않으면 역사를 몰라

[유럽문명의 원류 이스라엘 이집트 여행기 ⑧] 고고학박물관
13.02.07 09:50l최종 업데이트 13.02.07 09:50l
처음부터 이야기가 있는 박물관

 오딧세우스와 사이렌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사해사본관을 나온 우리 일행은 청소년 교육관을 지나 고고학 박물관으로 들어간다. 통로에 몇 개의 청동 소조상이 서 있고 벽에는 모자이크화가 걸려 있다. 이들 조소상도 로댕의 것이거나 로댕 풍으로 보인다. 모자이크화는 6세기 베이트 셰안(Beit Shean)의 레온티스(Leontis) 저택에서 발견된 비잔틴시대 문화유산이다.

베이트 셰안은 요단강 계곡에서 이스라엘 평원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어 고대 이집트시대부터 오스만 터키시대까지 전략적 요충이었다. 박물관에 있는 모자이크의 제목은 '오딧세우스와 나일강'이다. 그 중 가장 안쪽에 있는 '오딧세우스(Odysseus)와 사이렌(Siren)'이 가장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호머의 서사시에 나오는 신화적인 인물 사이렌은 반은 여자이고 반은 새이다. 그녀는 음악을 통해 지나가는 선원들을 자신의 집으로 유인하여 배를 난파시킨다.

오딧세우스는 선원들의 귀를 막아 그 유혹을 물리치게 한다. 그런데 정작 그 자신은 사이렌의 노랫소리를 듣고 싶어 돛대에 매달린 채, 배가 코스를 벗어나지 않도록 선원들을 독려한다. 그리고 바다에는 바다 요정 네레이드(Nereid)가 벌거벗은 채 켄타우루스(Centaurus: 반인반마)를 타고 있다. 그러자 사이렌이 바다 괴물과 싸우는 선원을 훼방 놓는다.   

성서시대 이전에도 많은 역사가 있다

 옹관묘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이 통로를 지나가면 왼쪽으로 고고학박물관 입구가 나온다. 입구에 손톱모양의 항아리가 우릴 맞는다. 이것은 사람의 유골을 담은 일종의 옹관(甕棺)이다. 여기서 다시 안으로 들어가면 시대순으로 유물이 정리되어 있다. 처음에 기원전 3500년 정도까지 선사시대를 보여주는 '문명의 새벽'이라는 공간이 나오고, 이어서 6개의 역사시대가 뒤를 잇는다. 이것을 순서대로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청동기 시대 역사를 보여주는 '가나안 땅'. 철기시대부터 알렉산더의 이스라엘 점령까지의 '성서시대'. 헬레니즘시대를 거쳐 황제가 로마를 다스리기 시작하는 초기까지의 '그리스인, 로마인, 유대인'. 서로마의 통치를 받던 '로마시대'. 비잔틴제국의 영역에 속하던 시기의 '성스러운 땅(The Holy Land)'. 8세기에서 16세기 초에 이르는 '무슬림과 십자군'.

 사자 조각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문명의 새벽 공간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구석기 시대 황소뿔과 인골이다. 그러나 이것이 가지는 역사적 의미는 정확치 않다. 이들을 지나면 고고학박물관에서 흔히 보는 수렵어로 도구, 농업과 목축에 사용하는 기구, 일상용품 등이 눈에 들어온다. 이들은 대개 돌이나 뼈로 만든 신석기시대 유물이다. 그 중 눈에 띄는 것은 뼈로 만든 물건과 장신구다. 그리고 토기도 있다. 토기 중에는 하프를 연주하는 악사의 모습도 보인다.

청동기 시대 전시물로는 왕과 귀족들이 의전과 행사에 사용하는 도구들이 많다. 왕흘이나 왕관, 촛대, 향료통이 눈에 띄고, 토기나 장신구에 들어간 문양도 훨씬 정교해진다. 베이트 셰안에서 나온 기원전 14세기 석재 사자조각은 살아있는 것 같다. 암수 두 마리의 사자가 노는 장면이 상하에 두 가지 모습으로 부조되어 있다. 위의 장면에서 두 사자가 앞발을 들고 서로 마주보고 있다면, 아래 장면에서는 암사자가 수사자의 등위에서 교태를 부리고 있다. 이곳에는 또한 금과 옥으로 만든 장신구도 보인다. 

성서시대 유물들

 아람어 비석 파편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성서시대는 이스라엘 민족이 가장 융성하던 때이다. 기원전 1200년부터 앗시리아인들에 의해 이스라엘 왕국이 멸망하는 722년까지다. 이때가 이스라엘의 전성기다. 그 후 이 지역이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정복되는 332년까지를 우리는 넓은 의미에서 성서시대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 시대 유물의 특징을 한마디로 단정 짓기가 어렵다. 제기, 토기, 사람과 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토용, 가구 장식, 생활용기, 장례용품, 무기, 장신구 등이 종류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이들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기원전 9세기 철기시대 만들어진 아람어 비석 파편이다. 이곳에는 아람왕 하자엘(Hazael)의 승리를 기리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그는 이글에서 이스라엘의 요람과 유다의 아하지야를 죽였다고 자랑하고 있다. 그 내용의 일부를 옮기면 다음과 같다.

"나의 주군 엘리아쉽(Eliashib)에게. 주군께 만복이 함께 하기를 빕니다. […] 각하께서 저에게 명령한 일을 잘 수행했습니다. 그는 지금 신전(the house of God)에 있습니다."

 하프와 피리를 부는 조소들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그리고 이 시대의 마지막을 장식한 기원전 4세기 페르시아 세포리스에서 발견된 우아한 술잔도 인상적이다. 도자기 형태로, 아래 손잡이 부분에 말장식이 있고, 나팔처럼 벌어진 위쪽에 술을 담도록 되어 있다. 또 색다른 것은 법률적인 증서에 해당하는 인증판이다. 이것은 기원전 6-7세기 예루살렘에서 나온 것인데, 대개 사람 이름을 적고 그와 관련된 몇 가지 기록을 새겨 넣었다.

그 시대 사람들은 또한 음악을 즐겼는지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도 많이 만들었다. 하프연주자, 플루트연주자, 북치는 사람, 춤꾼 등의 모습이 보인다. 그러나 이들 조소의 수준은 높지 않다. 이스라엘은 기원전 722년부터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기 시작했다. 그 후 586년부터 바빌론의 지배를 받게 되었고, 539년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게 된다. 이러한 지배는 알렉산더 제국, 로마제국으로 계속 이어진다. 

로마시대 유물들

 하드리아누스 황제 청동상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우리는 통상 로마의 지배를 받던 이스라엘의 이야기를 가장 많이 들었다. 그것은 이 시기 예수가 살았고, 그의 이야기를 통해 이스라엘을 가장 많이 알고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곳에 있는 고고학 유물은 예수와 거의 관련이 없다. 오히려 로마시대 로마적인 유물이 전시되어 있을 뿐이다. 그리스 로마시대 유물은 이곳 이스라엘보다 터키, 레바논, 시리아, 이집트 등에서 더 많이 볼 수 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본시오 빌라도 명문이 새겨진 돌판이다. 이것은 카이사리아에서 발굴된 것으로, 이것이 진본이고 카이사리아에 있는 것이 복제본이다. 이곳에는 청동과 대리석으로 만든 조각상들이 많이 보인다. 청동으로 만든 하드리아누스 황제 상반신상이 아주 매력적이다. 색을 입혔는지 붉은 기운이 도는 피부에 근엄하면서도 인자한 얼굴을 하고 있다. 몸의 상체에 창과 방패를 들고 싸우는 전사들의 모습이 양각되어 있고, 그 위로 조끼 형태의 외투를 걸쳤다. 양팔은 오히려 균형을 위해 안 만들은 것 같다. 지금까지 내가 본 로마 황제 중 가장 생동감 있는 작품 중 하나다.

 비너스와 에로스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그리고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인물들이 대리석으로 만들어져 진열되고 있다. 아폴로, 디오니소스, 아르테미스, 비너스 등이 눈에 띈다. 아르테미스는 풍요와 다산의 상징으로 그리스와 로마시대 많이 만들어졌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터키 에페수스의 아르테미스 신전이다. 이곳의 아르테미스는 에페수스에 있는 것보다 규모도 작고, 보존상태도 좋지 않다. 머리 부분이 떨어져 나갔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슴에 수많은 젖이 달려 있고, 허리 아래 부분을 동식물 문양으로 장식한 것은 똑 같다.

비너스는 늘 그렇듯이 에로스(큐피드)를 대동하고 있다. 이곳에서도 비너스는 누드에 긴 머리를 하고 있다. 하얀 대리석으로 반짝이는 아름다운 피부와 탱탱한 몸이 정말 매력적이다. 그런데 머리가 떨어져 나가 얼굴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는 알 수 없다. 비너스의 왼쪽으로 날개달린 에로스가 엄마에는 별 관심이 없는 듯 돌고래를 타고 있다.

유리제품을 통해 본 문명교류

 로만 글라스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성스러운 땅'이란 어떤 의미일까? 그것은 콘스탄티누스 대제에 의해 기독교가 공인되고, 테오도시우스 황제에 의해 기독교가 국교가 되면서 이스라엘이 성스러운 땅이 되었다는 뜻이다. 이스라엘이 성스러운 땅이 되면서 종교적인 위상이 높아졌을 뿐 아니라, 순례를 위해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경제적인 면에서도 번창하게 되었다. 당시 유대인들은 갈릴리호수 주변과 유다 지방에 주로 살았다. 그리고 사마리아인들은 요단강 서쪽 이스라엘 중부에 살았다.

그들은 그리스어를 일상어로 사용했으며, 종족에 따라 히브리어와 아람어를 사용하기도 했다. 그들은 동서양의 가교 역할을 하는 비잔틴 제국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다양한 문명을 받아들일 수 있었고, 무슬림에 정복당하는 638년 이후에도 수준 높은 문화를 유지할 수 있었다. 당시 이슬람 문명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과학과 수학, 천문학 등을 발전시켰기 때문이다. 그러한 문명교류의 증거를 이스라엘 박물관의 유리제품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곳에 있는 유리들이 소위 로만 글라스(Roman Glass)다. 로만 글라스는 헬레니즘의 기술을 받아 발전시킨 것이다. 전 시대와 다른 것은 1세기 경 유리를 불어 제품을 만드는 방법을 개발했고, 색이 없는 투명한 유리를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로만 글라스는 당시 가정용, 산업용, 장례용으로 생산되었다. 산업화되면서 유리의 생산과 유리 용기의 생산이 분리되기 시작했다. 그를 통해 유리의 사용이 좀 더 일상화될 수 있었다.

 사산조 페르시아 또는 이슬람계 유리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당시 유리생산의 중심지는 알렉산드리아였다. 이곳에서 생산된 유리가 배를 통해 직접 로마로 들어가기도 했고, 육로로 이집트와 터키를 거쳐 유럽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이들 교통로의 중간에 있는 이스라엘에서도 자연스럽게 유리 용기가 사용되었고, 그들의 일부는 동쪽의 인도, 중국까지 전해질 수 있었다. 로만글라스의 유리 기술은 4-7세기 사산조 페르시아에 전해졌고, 그것이 다시 7세기 이후 이슬람 유리로 발전했다.

그러므로 이곳 박물관에 있는 유리는 로만 글라스 시대부터 이슬람 시대까지 만들어진 것이다. 투명도, 색깔, 예술성 등을 고려할 때, 이들은 주로 사산조 페르시아와 이슬람 시대 유리그릇으로 보인다. 손잡이가 달린 제품들도 있고, 장식용으로 밖을 치장한 제품들도 있다. 그리고 색깔이 있든 없든 유리의 투명도가 상당히 높다. 예술성도 로만 글라스에 비해 뛰어나다. 이들 중 일부는 생활용으로 사용했고, 일부는 죽은 사람을 위한 부장용으로 사용되었다.

 
작성자
비밀번호
제목
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