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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09.04.02] 답사강의 2강 강의록 작성자 관리자
파일 실크학교서안돈황강의.hwp 조회수 887
[09.04.02] 답사강의 2강 강의록
 

실크로드학교

서안·돈황강의

[2009.4.2]

하서주랑, 서안에서 돈황까지

 

 

◆ 하서주랑(河西走廊) : 서안에서 난주(蘭州)와 ‘하서4군’인 무위(武威)·장액(張掖)·주천(酒 泉)·돈황을 거쳐 옥문관(玉文關)에 이르는 황하 이서의 약 900km(폭 수km 에서 100km)에 달하는 좁은 길, 오아시스 육로의 일부로서 중요한 국제 통로

 

Ⅰ. 서안(西安)

◆ 서안의 역사

▶ 시 원--- 신석기 시대 반파(半坡) 마을에서 시작; 청동기 시대인 서주(西周) 왕조 (BC 11c) 때 처음엔 서북 근교인 주원(周原)에, 후에 서남쪽의 풍(灃)과 호 경(鎬京)으로 천도; 전국시대 말엽(BC 3~2c) 진(秦)이 근교 함양(咸陽)에 도 읍, 진시황(秦始皇)이 통일 후 전국 부호 12만을 이주시켜 아방궁(阿房宮) 짓고 도성 축조

▶ 11개 왕조(1,100여년간)의 수도

# 한대--- 정도, 36㎢ 대지에 길이 25㎞ 성벽 둘러침, 이름을 ‘자손들이 영원히 평안하기를 바란다’(욕기자손장안 欲其子孫長安)는 의미에서 ‘장안’으로 명명

# 수대--- 수 문제(文帝)는 전대 왕조인 북주(北周) 흔적 없앤다고 전소, 약간 떨 어진 곳에 ‘크게 흥할 것이다’라는 뜻에서 ‘대흥성(大興城)’ 신축, 성 지은 사 람이 서역 출신의 우문개(于門愷)라서 서역적 요소 남아있음

# 당대--- 수 계승, 장안성으로 개명, 증수 확장해 세계적 도시로 부상, 성벽 37 ㎞, 면적 84㎢, 인구 100만, 노폭 150~170m 도로가 동서남북으로 뻗고 시 가지는 바둑판처럼 110개 방(坊)으로 구획, 황궁에 이르는 주작대로(朱雀大 路)를 중심으로 동구와 서구로 양분, 거기에 동시(東市)와 서시(西市)라는 시 장, 시장마다 ‘진기한 천하 보물이 다 모인다’는 점포 200여개, ‘밤낮 시끄럽 고 등불이 꺼질 줄 모르는’ 야시장, 특히 서시는 서역상인들로 밤낮 붐빔, 호 악(胡樂), 호무(胡舞), 호의(胡衣), 호식(胡食) 등 호풍(胡風) 일색,

# 명대--- 오늘의 서안성(西安城) 수축(14c 말), ‘서안’으로 개명

# 현재--- 인구 660만, 섬서성 성도, 서북 최대 상공업 도시

 

  당대 장안성 도시구획 세부도

서안과 실크로드

실크로드(오아시스 육로)의 동단이나 출발지로 오해--- 옛 서시의 개원문(開遠 門)과 ‘실크로드 기점 군상’(석조구조물); 동단이나 출발지가 아니라 지나가 는 요지일 뿐, ‘파수절류(灞水折柳’)와 ‘위수절류(渭水折柳)’가 이를 증명, 동 쪽으로 떠나는 사람들에게는 파수 가에서, 서쪽으로 떠나는 사람들에게는 위 수 가에서 버드나무를 꺾어 둥근 고리를 만들어 주었다는 고사, 고리를 뜻하 는 ‘환(環)은 ‘돌아오다’란 뜻의 ‘환(還)’자와 발음 같으므로 빨리 돌아오라는 염원을 담은 작별인사, 이런 것을 해음(諧音)현상이라고 함

 

실크로드 오아시스 육로 기점 석조군상(서안 서시 터)과 개원문

실크로드의 개척과 서안--- 기원전 2C 한무제의 장건(張騫) 파견(제1차 서역 사행), 즉 ‘서역착공(西域鑿空)’, 이를 계기로 파미르 고원을 중심으로 한 오 아시스로 개척, 그 시발점이 한 수도인 장안, 그래서 당대까지 이 육로의 남 ․ 중 ․ 북도의 기점으로 인식,

실크로드를 통한 교류 입증 유물

#대진경교유행중국비(大秦景敎流行中國碑)’ -- 중국 최대 ‘석조문고(石造文 庫)’라고 하는 ‘비림(碑林)’(한대부터 청대까지 명필 석비 1,095기 소장) 에 있는 경교(景敎, 네스코리우스파 기독교=고대동방기독교)비, 781년 건립, 고 2.7m; 내용은 경교 교리와 의례 및 7c 중엽 중국에 들어온 후 약 150년간(태종~덕종 5대) 전파과정 기술; 동서문명 융합상, 상부 와 비신. 좌대로 구성, 상부는 용이 큰 여의주(불교)를 받쳐 들고 있고 그 밑에 십자가(기독교)가 연꽃과 뜬구름(부운 浮雲, 도교) 속에 새겨져 있음, 기독교 용어들을 유교나 불교, 도교에서 차용, 하느님=건(乾, 종 교=법(法), 주교=법주(法主), 구원=제도(濟度) 사원=법당(法堂) 등, 그래 서 일부에서는 ‘비경배불(非景非佛)’(경교도 아니고 불교도 아님)라고 혹평; 기독교 동전사 연구의 권위자인 골든(E.A.Goldon)여사는 1917년 이 비의 모조품을 금강산 장안사(長安寺) 경내에 건립

 

대진경교유행중국비 상부의 십자가와 연꽃 및 부운(浮雲).

 

※ 경교(고대기독교)와 한국 -- 경주 출토 돌십자가와 성모 마리아상; 훈춘 발해 유적 출토 보살상의 십자가; 원주 왕류도(王留洞)의 분처 상(分處像)

종교전파의 시원문제 -- 초전(私傳, 전달)과 공전(公許, 변용)

# 반파(半坡) 출토 각종 채도(반파박물관 소장)

# 헬레니즘식 보살상 -- 서안 기차역 건설공사장 출토, 목걸이와 복식 등이 헬레니즘식(비림박물관 5호실 소장)

# ‘당삼채’(唐三彩) 등 각종 호상들의 부조상

 경주 불국사 출토 돌십자가 

길림성 훈춘현 팔련성지 출토 발해 삼존불

◆ 주요 유적유물 : 시내(성벽 내)에는 비림, 청지대사(淸眞大寺), 섬서(陝西)역사박물관 등, 동쪽에 반파유적. 병마용(兵馬俑). 화청지(華淸池) 등, 서쪽에 한·당대의 왕릉 과 법문사(法門寺, 남쪽에 흥교사(興敎寺, 현장과 원칙의 탑)와 초당사(草堂 寺, 구마라십 석주) 등

▶ 병마용박물관--- 진대의 도용굴(陶俑窟), 3개 굴, 1974년 농민이 우물을 파다가 발 견, 가장 큰 제1굴은 동서 230m, 남북 62m, 마용(馬俑)과 전차 6,000여구 의 병마 출토, 3개 굴에 총8,000여 병용과 무기류 1만 점 추산, ‘용(俑)’이란 순장자를 대신해 매장하는 인형(人形), 병용 신장 178~187cm, 무게 300kg, 매개인의 표정 상이, 손에 무기 소지, 당시는 채색, 2호굴은 사격수부대의 병 용과 전차, 3호굴은 사령부의 인마용

도용굴(陶俑窟) 마차(병마용박물관 소장) 

후한대에 창건된 법문사(法門 ) 정문과 진신보탑(47m)

▶ 華淸池--- 시 북동 30km, 여산(驪山) 기슭 온천, 3,000년 역사, 진대에는 ‘여산탕 (驪山湯)’이란 이름, 별궁 설치, 당 현종 때(747) 정비해 화청지로 개명, 현종 은 매해 겨울 양귀비(楊貴妃)와 함께 이곳에서 보냄, 그들이 쓰던 ‘해당탕(海 棠湯)’과 ‘연화탕(蓮花湯)’ 발굴, 4개의 온천(일당 영출량 112t, 온도 43도); 1936년 서안사변(西安事變) 때 장개석(蔣介石) 도망

 

◆ 선현들의 발자취

▶ 흥교사(興敎寺)와 원칙(圓測)--- 동남 24km, 벽돌 정문에 ‘호국흥교사(護國興國寺)’ 라 쓰임, 고탑 3기, 가운데 우뚝 솟은 것이 높이 23m의 5층 현장탑(玄奘塔, 삼장탑 三藏塔, 대편각탑 大遍覺塔)과 우측에 기사탑(基師塔, 규기탑 窺基塔), 좌측에 3층 전탑(塼塔)인 칙사탑(測師塔, 원측탑), 원측(613~696=8세)은 신라 왕손 출신의 법사, 15세 도당해 장안에서 수학, 인도에서 돌아온 현장법사의 문하생, 스승과 함께 우주만물의 본질을 인식하는 유식학(唯識學)을 터득, 중 국불교의 핵심인 법상종(法相宗)의 한 비조, 산스크리트 등 외국어에 재간이 있어 경전 번역에 큰 업적, 규기의 질시(“현장의 지식을 가로챘다”), 『유식 논서십권(唯識論書十卷)』등 명저 남긴 대학승, 생불로 추앙 받다가 태종 명 에 따라 서명사(西明寺)에 주석하다가 입적, 유해는 향산사 백탑(香山寺 白 塔)에 봉안되었다가 송나라 때 현장탑 옆에 이장, 어릴 적 경문은 한번 듣고 읽기만 하면 내용을 통달할 정도로 총명

▶ ‘신라고승혜초기념비(新羅高僧慧超紀念碑)와 혜초--- 서남쪽 주지현 금분(周至縣 金 盆) 댐 기슭, 인도에 돌아온 후 50여 년 간 장안에 주석, 천복사(薦福寺)에서 스승 금강지(金剛智)와 8년간 밀교경전 연구, 대흥사(大興寺)에서 불공삼장 (不空三藏) 강의를 수강하고 그의 6대 제자 중 한 사람이 됨, 관정도량(灌頂 度量) 등 밀교의식 주도, 궁중 원찰인 내도량에서 지송승(持誦僧) 중책 맡고 황제의 대명궁(大明宮)에 수시로 드나들 정도로 신망이 높았음, 세계 4대 여행기의 하나인 <왕오천축국전> 저술, 774년 1월 대종의 명에 따라 흑 하(黑河)의 유선사(遊仙寺)의 옥녀담(玉女潭)을 찾아가 기우제 주관; 2001년 땜 부근에 기념비 세움

▶ 이현묘 예빙도(李賢墓 禮賓圖)와 신라사절--- 이현(654~684)은 고종의 여섯째 아 들로서 장회태자(章懷太子)로 봉해졌으나 어머니 측천무후의 박해로 유배되 었다가 자결을 강요당함, 형 중종이 등극하자 복권시켜 건릉(乾陵) 곁에 안 장, 묘에 많은 벽화, 그중 예빈도는 묘길 양벽에 그린 벽화, 동벽의 외국축하 사절 3명 중 조우관(鳥羽冠) 쓴 신라사절

  이현묘(李賢墓) 예빈도의 신라 사절(조우관 쓴 사람)

 

Ⅱ. 돈황(敦煌)

 

◆ 돈황의 역사와 오늘

명 칭 --- ‘크게 번성한다’는 뜻, ‘인후’(병목), 동서문명의 ‘보물고’와 ‘미술관’, 화융 (華戎, 한족과 서역인)이 ‘뒤섞여 사는 도시’, ‘사막의 대화랑(大畵廊)’

▶ 역 사 --- 감숙성과 청해성, 신강성이 만나는 교통요지; 신석기 시대부터 인간 거 주; 춘추전국 시대는 수박과 참외 성산지로 과주(瓜州)로 월찌와 오손인들의 방목지; 진과 전한 초는 흉노 지배; BC 2c에 전한 영역에 들어오자 하서 4 군의 하나인 돈황군 설치; 5호 16국 시대는 전량(前涼) 영지로 사주(沙州, 모래 많은 곳); 서량(西涼) 때 잠깐 도읍; 5c 북위 점령시 돈황진으로 개명; 수당 때 돈황군으로 복원, 당나라 전반기에 전성, 후반기는 일시 토번(티베 트)에게 점령; 11c 초부터 190여년간 서하(西夏)에 점령, 이때 1천여년의 막 고굴이 묻히고 맘; 원대는 사주로, 명대는 사주위로, 청대는 돈황현으로, 지 금은 돈황시로 개명

※ 개명사 -- 과주(瓜州, 춘추전국)→돈황군(전한)→사주(沙州, 5호16국)→돈황 진(북위)→돈황군(수.당)→사주(원)→사주위(沙州衛, 명)→돈황현(청)→돈 황시(현재)

▶ 오 늘 --- 시 중심에 있는 ‘비파를 켜는 처녀상’(발랄한 오늘을 상징); 18만명, 한 족 99%, 회족과 티베트족, 위구르족 등 10개 소수민족은 1%; 녹지(오아시 스) 면적은 4.5%, 390km의 당하(黨河)가 관통, 초당 3톤의 샘물, 녹지 중 녹지, 감숙성(甘肅省) 최대의 면화와 과일 산지, 칠리진(七里鎭)은 유수의 원 유단지, ‘서북대개발’의 중심지 중 하나, 호텔 10여개

▶ 유 물 --- 국가 보호 받은 유물 59점, 명사산과 월아천은 전국 40대 관광명승지의 하나, 백미는 세계문화유산인 막고굴(천불동)

# 명사산(鳴沙山) -- 고 1,600m, 동서 40km, 남북 20km

# 월아천(月牙川) -- 초승달 모양, 2천년 전부터 기록에 나옴, 천혜의 생명 수, 동서 224m, 남북 최대 39m, 깊이 2m

천혜의 생명수 월아천

 

◆ 막고굴(莫高窟, 千彿洞)

▶ 조 성 --- 돈황 동남 20km의 명사산 기슭, 동쪽 끝 절벽 1.6km; 4c 중엽 전신 때 승 악준(樂僔) 개굴, 원대까지 각 조대에 개굴

▶ 규 모 --- 잔여석굴 550여개 중 소상과 벽화 있는 굴 474개; 4,400여구 소상, 변 화 연면적 4,500㎡(1m 폭으로 나열하면 45km=112.5리); 다양한 언어의 ‘돈 황문서’ 3만 여점

▶ 유물 도굴사 --- 1899년 헝가리 지질학자 로치(L.de Loczy)가 처음 탐방; 스타인 은 주지 왕원록(王圓籙)을 속여 사경류(寫經類) 20상자와 회화류 5상자를 마 제은(馬蹄銀, 말굽 모양의 중국 은화) 40닢과 바꿈; 펠리오도 주지를 매수해 사경류 1,500여권이 든 24개 상자와 회화, 직물류 5상자를 헐값에 사들여 가져감; 오오타니(大谷) 탐험대도 주지가 숨긴 잔여 문서 중 500여권의 사본 편취; 러시아 고고학자 올덴부르그(S.F.Oldenburg)와 미국의 고고학자 워너 (L.Warner)도 각각 벽화 10장과 20여장을 뜯어감; 지금 장물을 되돌려달라 고 해도 ‘문화유산의 보편주의 가치’ 운운하면서 반환 거부, 문화유산은 창조 자인 주인에게 되돌려주는 것은 불문율

펠리오가 왕오천축국전을 발견하는 모습

▶ 누가 그렸는가 --- 돈 많고 권세 있는 귀인들의 공양이나 사주로 그렸다는 기록은 있어도 누가 그렸는가는 기록 없음, 굴 북쪽 끝 별집 같은 동굴군은 화공들 의 거주지(물감그릇과 광물질안료 발견), 헐벗고 굶주린 民草화공들이 그림; 장경동(藏經洞)에서 발견한 조승자(趙僧子)의 ‘전아계(典兒契)’란 문서에는 공 장도료(工匠都料, 도편수)인 그의 살림이 구차해 아들을 6년 동안 친구에 전 당 잡히고 보리 20석과 좁쌀 30석을 얻었다는 내용이 기록; 재주가 오히려 화근, <역대명화가(歷代名畵家)>에는 당나라 때 명화가 염립본(閻立本)에 관 한 일화, 어느 날 太宗의 봄놀이에 동참, 연못에서 노는 진귀한 새를 그려보 라는 명받고 땀을 흘리며 뛰어다니고 엎드리기까지 하면서 그려 바침, 그는 이를 부끄럽게 여겨 훗날 아들에게 ‘화가로서 유명하게 되어도 이리저리 뛰 어 다니는 심부름꾼과 다름없다. 그림을 배워서는 안된다’고 후계를 내림, 막 고굴의 화폭 하나하나는 모두 천대받고 멸시 당하던 민초들의 손끝에서 나온 걸작들, 인류의 거룩한 문명은 모두 노동하는 민초들에 의해 창조

 

막고굴의 상징인 9층 북대불전(좌)

 

칠존상(45굴)

 

화려한 벽화(285굴)

◆ 한국 관련 유물

▶ 藏經洞(17동) --- 16호굴의 곁간굴(耳室), 높이 180cm, 아래 폭 92cm의 작은 문, 사방 3m 정도의 작은 방; 1900년 주지가 발견, 1908년 펠리오가 <왕오천축 국전> 발견(사경류 1,500여종 중), 227행 총 6,300여자

▶ 61호굴의 ‘오대산지도(五臺山地圖’와 혜초의 입적지 --- 780년 오대산 건원보리사 (乾元菩提寺)에서 입적했다는 기록뿐, 그림 13×3.4m, 4대 명산의 하나인 오 대산은 250㎢, 송대에 그린 이 지도에는 67개의 명찰 이름, 여러 가지 생활 풍속도; ‘신라승탑(新羅僧塔)’과 ‘신라송공사(新羅送供師)’ 명문

▶ 기타 유물 ---

① 220호와 335호, 237호굴의 조우관 ,

② 98호굴 등의 장구춤 -- 공중으로 날아가는 장구

③ 428호굴 등의 비천상(飛天像)--- 고구려 덕흥리(德興里) 고분 전실 천장 의 ‘천마지상(天馬之像)’(5c 초)과 동류

④ 435호굴 벽화의 인물상 음영기법(陰影技法) --- 고구려 수산리(水山里) 고분(5c 후반) 기단의 음영기법(일명 明暗技法, chiaroscuro))과 동류

  펠리오가 발견한 왕오천축국전 원본(파리 국립도서관 소장)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