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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월10일 자료] 문명담론과 문명교류-정수일 작성자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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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10일 자료] 문명담론과 문명교류-정수일
 

 

문명담론과 문명교류

 

. 문명담론

1. 문명의 이해

2. 근대적 문명담론

3. 현대적 문명담론

 

. 문명교류

1.     문명교류의 당위성

2. 문명교류와 문명권

3. 문명교류의 전개과정

 

정 수 일

 

머리말

 

문명은 정형화된 구조인 동시에 공시적으로 부단히 상호 이동하는 실체이다. 이 문명의 상호이동이 곧 문명교류이며, 그 통로가 바로 실크로드이다. 18세기 프랑스 계몽주의자들에 의해 문명이란 개념이 창출된 이래 문명에 관한 담론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발전적으로 심화되어 미래의 대안론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문명담론은 19세기 중반 스펜서와 모건, 타일러 등에 의한 ‘문명진화론’으로부터 발단되어, 같은 세기 말엽 스미스와 페리가 제시한 ‘문명이동론’, 그리고 20세기 전반 토인비가 주장한 ‘문명순환론’으로 이어진다. 이들 담론은 주로 정형화된 구조로서의 문명 자체에 한정되었다. 따라서 이 시기의 문명담론은 근대적 문명담론이라고 개괄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비해 20세기 후반에 이르러서는 탈냉전시대의 도래와 더불어 이른바 ‘지구촌시대’가 예단되면서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타자론)이나,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충돌론’, 하랄트 뮐러의 ‘문명공존론’, 그리고 ‘문명교류론’ 같이 주로 문명 간의 관계문제가 담론의 중심과제로 부상하는데, 이들 담론을 현대적 문명담론이라고 규범해 본다. 근대적이건 현대적이건 간에 문명담론에서는 문명 자체나 문명 간의 관계에 관한 어떤 규범적 패러다임을 설정해보려는 시도는 상존해 왔다.

현대적 문명담론은 이른바 ‘문명충돌론’이 기폭제가 되어 활성화되었지만, ‘타자론’이나 ‘공존론’, ‘교류론’ 같은 담론은 그 이전부터 이미 부분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그라나 아직 그 어느 것 하나도 학문적 정립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형편이다. 특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기를 교류의 미증유확대 시대라고 특징지을 때, 문명교류에 관한 학문적 정립은 절박한 과제라고 아니할 수 없다.

철학을 포함한 모든 문물의 존재와 그 인식은 유무형의 전파와 수용, 즉 교류를 떠나서는 상상할 수 없다. 필자는 본고에서 문명담론에 관한 역사적 고찰에 기초해, 미래 대안론으로서의 문명과 그 교류에 관해 시론하려고 한다.

 

 

. 문 명 담 론

 

1. 문명의 이해

20세기 후반 냉전시대가 마감되면서 문명담론이 시대의 화두로 부상하고 있다. 그 역사적 배경은 우선, 문명에 의한 새로운 대안과 해법의 모색이다. 인류가 각종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추구해 오던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및 이데올로기적 패러다임이나 방도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냉전의 종식을 계기로 그 효용에 대해 회의론이 제기되자, 대안으로 정신적 및 물질적 보편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문명에 관심을 돌리기 시작하였다. 그러면서 새로운 문명 패러다임으로 현실을 해석하고 미래를 예단하려는 학구적 탐색이 여러 모로 시도되어 마침내 현대적 문명담론의 장이 열리게 되었다.

다음으로 그 역사적 배경은 문명 의존도의 상승과 그 중요성의 증대이다. 세계는 지금 개방과 교류를 통해 도래된 다문명시대를 살고 있으며, ‘문화(문명)의 홍수’ 속에서 과학기술을 비롯한 문명을 떠나서는 한시도 삶을 지탱할 수가 없다. 이제 문명은 국가나 민족, 이데올로기나 계급을 초월하여 대량으로 양산되고 소비됨으로써 미증유의 보편적이며 평준화된 , 그리고 다양한 문명이 재생산되고 있다. 살아남는 길은 오로지 문명의 역군이 되는 길이며, 인간적인 삶의 척도는 얼마만큼 문명을 향유하는가에 달려 있다. 그리하여 문명은 어느 특정집단의 전유물이 아니라, 보편성과 대중성을 띠면서 ‘대중문화’의 이름 아래 무한대로 확장심화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는 그에 상응되는 문명담론을 절실히 요청하고 있다. 그러나 문명의 개념으로부터 시작하여 그 내용이나 전개과정 등에 대한 학계의 이해는 사뭇 엇갈리며, 논쟁도 분분하다. 이에 필자는 나름의 이해에서 문명 관련 몇 가지 문제를 논급하려고 한다.

문명(civilization)이란 인간의 육체적 및 정신적 노동을 통하여 창출된 결과물(結果物)의 총체로서 물질문명과 정신문명으로 대별된다. 문명의 생명은 공유성(共有性)에 있다. 서로가 공통적인 문명요소들을 공유하지 않으면 문명이란 존재할 수 없으며, 보편문명(universal civilization)을 공유하기 위한 문명교류도 성사 불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인류문명의 발달과정은 문명의 공유성을 실현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공유성은 문명이 지니고 있는 근본속성에서 비롯된다.

문명은 자생과 모방의 두 가지 근본속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에 의해 탄생하고 발달하며 전파된다. 자생성은 문명의 내재적이고 구심적인 속성으로서 문명의 보편성과 개별성을 규제하고, 모방성은 문명의 외연적(外延的)이고 원심적인 속성으로서 문명의 전파성과 수용성을 결과한다. 따라서 자생성과 모방성은 문명의 2대 속성인 동시에 그 발생발전과 전파의 2대 요소이기도 하며, 서로가 상보상조적인 관계에 있다. 그 어느 하나가 결여되거나 미흡하면 문명은 침체나 기형을 면할 수 없다. 그 중 문명의 모방은 그것이 창조적이건 기계적(답습적)이건 간에 문명 간의 교류를 통한 전파와 수용과정에서 현실화된다. 그리하여 교류는 모방에 의한 문명의 발달을 촉진하는 필수불가결의 매체이다.

오늘날 문명개념에서 심히 혼돈되는 것이 문화(culture)와의 구별 및 그 관계문제이다. 문명사에서 보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문화는 문명에 앞선 관용어이다. 동양의 한자문명권에서는 일찍이 문화를 폭력을 사용하지 않고 인간을 교양하는 문치교화(文治敎化)의 뜻으로 사용하여 왔다. 이에 비해 서양에서는 인간이 자연을 정복하고 개조하는 행위나 그 과정을 문화(라틴어 cultura→영불어 culture, 독일어 kultur)로 이해하였다. 동양에서의 문화 개념은 지금까지도 대체로 ‘문치교화’로 습용되고 있으나, 서양의 경우 문화 개념은 근세에 와서 새로 출현한 문명 개념과 혼동되면서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영국과 프랑스를 비롯한 서구에서는 1718세기에 일어난 시민혁명과 산업혁명을 계기로 근대적 시민사회가 형성되자 문명이란 새 개념이 출현하였다. 18세기 후반 프랑스의 계몽주의자들은 프랑스문화의 보편성에 대한 신념에서 출발해 문명을 세계 시민성과 연관시켜 문명은 민족문화처럼 폐쇄적이 아니고 세계에 통용되는 것으로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라틴어로 ‘시민’이란 뜻의 ‘civis'(형용사는 civilis)를 ’문명‘이란 뜻의 ’civilization'으로 전화시켰다. 그리하여 문명을 인간이 사회를 발전시키기 위해 외계(자연)를 정복하는 수단의 개발과정으로 이해하다가, 20세기에 들어와서는 주로 문화인류학자들에 의해 인간이 누리는 생활양식의 총체로 개념화하고 있다. 그러면서 대체로 문명과 문화를 단계시(段階視)하여 문명은 문화의 발전(진보)단계로 간주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오늘에 와서는 대체로 이상적인 인간사회를 의미하는 개념으로 일반화되고 있다.

한편, 독일은 영국이나 프랑스와는 달리 시종 문화 개념을 고집해 오고 있다. 이것은 근현대 독일 역사의 특수성과 관련된다. 서구 기독교문화의 계승을 자처해 오고, 자국 문화의 우수성을 자긍해 온 독일은 시민혁명이나 산업혁명에서 뒤떨어지다 보니 자신들의 우수한 철학적 사고를 발동하여 인간의 정신개발 과정이나 가치체계를 일괄하여 문화로 정립하고, 문명은 문화의 한 형태로서 고작 기계적 및 기술적 수단이나 지칭하는 것으로 규정하였다. 요컨대, 독일은 문화 위주의 관념론적 개념에 집착한다. 그래서 『문명의 공존』저자인 독일 정치학자 뮐러는 주로 종교가치 체계를 문명 분류의 기준으로 삼은 헌팅턴의 문명관은 독일의 전통적 문화 개념을 따른다고 지적하였다. 그러나 영국이건 프랑스건, 독일이건 간에 문명과 문화를 미개와의 대비 개념으로 사용하는 데는 일맥상통한다. 즉 미개인에게 문화는 있어도 문명은 없다는 식의 이해이다.

동양의 경우, 문명에 관한 한 자체의 학문적 정립은 없이 서구의 것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18세기 말 일본이 서구의 선진문물을 수용해 근대화한다는 의미의 ‘문명개화(文明開化)’란 말을 사용하면서부터 한자문명권에서 ‘문명’ 일어가 조출되었다. 서세동점에 편승한 서구의 선진문물을 수용하면서 취한 우리의 ‘동도서기(東道西器)’나 중국의 ‘중체서용(中體西用), 일본의 ’화혼양재(和魂洋才) 중 ‘서기’나 ‘서용’, ‘양재’는 모두가 서구의 과학기술 문명을 뜻하는 말들이다.

이렇게 문명과 문화의 개념 및 그 관계에 관한 연구는 오랫동안 진행되어 왔지만, 아직 학문적 정립은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어 논의는 계속되고 있다. 문명담론이 새로운 시대적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이 시점에서 이제는 더 이상 논의를 지연시킬 수 없다. 저간의 논의들을 귀납하면 그 정립의 윤곽은 그려낼 수 있을 성싶다. 브로델(F. Braudel)에 따르면 ‘문명은 하나의 공간, 하나의 문화지역의 문화적 특성과 현상을 집약’한 것이고, 도슨(Dawson)은 문명은 ‘특수한 민족의 업적인 문화적 창조성의 특수하고 독창적인 과정’이라고 정의하였으며, 슈펭글러(O. Spengler)는 문명을 인류의 가장 외현적(外現的)이고 인위적인 상태가 지속된 ‘과정물을 승계한 완성품’이라고 지적하였다. 헌팅턴도 ‘문명은 크게 씌어진 문화다., ‘문명은 포괄적이다., ‘문명은 가장 광범위한 문화적 실체다.’라고 강조하였다.

이러한 여러 가지 유사견해들을 종합 고려해 보면, 문명과 문화의 관계는 위계(位階)적이나 단계(段階)적 관계가 아니라, 총체와 개체, 복합성과 단일성, 내재와 외형, 제품과 재료의 포괄적 관계라는 결론을 도출하게 된다. 요컨대, 문화는 문명을 구성하는 개별적 요소이며 그 양상이다. 비유컨대, 문명이 총체로서의 피륙이라면 문화는 개체로서의 재료인 줄, 즉 씨줄과 날줄에 해당한다. 여기에 부첨되는 문양 따위는 또 다른 재료로서의 문화현상이기는 하나, 그 바탕은 어디까지나 씨줄과 날줄이다.

개체와 재료로서의 문화도 물질문화와 정신문화로 크게 구분할 수 있다. 물질문화를 씨줄이라고 하면 정신문화는 날줄에 빗댈 수 있다. 마치 씨줄과 날줄이 엮여서 피륙이 되듯이, 문질문화와 정신문화가 조합되어 문명이란 하나의 총화물(總和物)이 구성되는 것이다. 그런데 재료(문화)로서의 줄도 따지고 보면 또한 몇 가지 재료로 구성된 제품이다. 물론 이 제품은 문명으로서의 제품이 아니고 문화로서의 제품일 뿐이며, 그것을 구성하는 재료는 층위적(層位的) 의미에서 세분문화(細分文化)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농경문화나 종교문화 같은 것이 이 세분문화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세분문화는 또 미세분문화(微細分文化)로 분화된다.

 

2. 근대적 문명담론

18세기를 전후해 서구에서 일어난 산업혁명과 시민혁명을 계기로 프랑스의 계몽주의자들은 종래의 문화 개념에 대한 성찰과 새로운 시대적 요구를 반영하여 문명이란 새로운 개념을 창출하였다. 이를 계기로 문명에 관한 담론이 시작되었는데, 그 주 내용은 정형화(定型化)된 구조로서의 문명 자체의 변화나 성장, 일방적 이동에 관한 논의였다. 그 중 몇 가지 대표적인 이론을 들면 다음과 같다.

 

1) 문명진화론 문화진화론자들이 주장하는 문명의 진화(evolution of civilization)란 장기간에 걸쳐 문명이 단계적으로 하나의 유형에서 다른 유형으로 변해나가는 과정을 말한다. 이것은 문명이 시간의 연속선상에서 단계적으로 변화(변동)가 거듭된다고 보는 시각으로서, 변화는 단기적인 진화이고, 진화는 장기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다.

문명진화론에 따르면 문명의 변화는 마치 생물진화의 돌연의변(突然變異,mutation)처럼 그 문명체계 내에서 일어나는 새로운 문명요소의 발견이나 발명에 의해서, 또는 유전자의 이동처럼 서로 다른 문명 간의 접촉으로 인해 생겨나는 문명의 전파에 의해서도 일어난다. 그밖에 유전자의 제거처럼 어떤 문명요소가 제거되거나 유전자의 유실(流失)처럼 어떤 문명요소가 소멸되어 문명의 변화가 발생할 수도 있다. 요컨대, 문명은 생물의 진화(특히 유전자 진화)원리와 흡사한 원리로 변화를 거듭한다는 것이다. 일찍이 인류학자들은 이 점에 착안하여 문명의 변화를 진화론적으로 고찰하여 이른바 문명진화론을 정립하였다. 이 이론 가운데서 전파에 의한 문명의 진화는 문명교류와 직결되는 현상이다.

흔히들 문명진화론은 다윈(C. Darwin)이 제창한 생물진화론의 영향을 받아 후출한 것으로 인지하는데, 기실은 문명진화론이 생물진화론보다 앞서 제시되었다. 다윈은 1859년에 저술한 『종의 기원』에서 처음으로 생물진화론을 언급했지만, 그에 앞서 사회과학자 맬더스(T.Malthus) 1798년에 저술한『인구론』에서 이미 적자생존(適者生存)의 원리를 논하였고, 철학자 스펜서(H. Spencer) 1852년에 발표한 논문 「발전가설(發展假說)」에서 문명진화론을 피력하였다. 스펜서에 이어 인류학의 선구자인 모건(H. Morgan)과 타일러(E. B. Tylor)도 나름대로 문명진화론을 개진하였다.

그들이 제창한 문명진화론의 주요 내용을 개괄하면, 문명은 세계의 모든 사회에서 기본적으로 동일한 양식으로 연속적인 발전단계를 걸쳐 진화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진화단계는 야만시대(Savagery, 구석기시대)에서 미개시대(Barbarism, 신석기시대)를 거쳐 문명시대(Civilization, 철기시대)에 이르는 3단계라는 것이다. 이렇게 초기 진화론자들은 모든 문명은 동일한 선을 따라 단계적으로 진화한다고 간주하였다. 이러한 진화를 일컬어 단선진화(單線進化, unilinear evolution)라고 하며, 그 이론을 단선진화론이라고 한다.

단선진화론자들은 각 사회의 문화적 다양성을 무시하고 구체적인 현상에 무관심하며 선교사들이나 상인들로부터 전문(傳聞)하여 신빙성이 결여된 자료들을 갖고 가만히 앉아서 인류문명의 진화과정을 자의로 재구성하는 사람들이라고 하여 ‘안락의자 인류학자(armchair anthropologists)'로 불렸다. 따라서 20세기 초반부터 그들의 이러한 비과학적인 이론은 전반적으로 거부되었다. 그 대신 2차 세계대전 전후에 활약한 인류학자 스튜어드(J. Steward)에 의한 이른바 다선진화론(多線進化論, Theory of multilian evolution)이 대두하였다. 이 이론의 핵심은, 모든 문명은 동일한 선을 따라 진화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선을 따라 각이한 양상으로 진화한다는 것이다.

단선진화이건 다선진화이건 간에 문명의 진화를 교조적으로 생물진화와 동일시하거나 대치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양자 간에는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즉 생물은 유기체이나 문명은 유기체가 아닌 초유기체(무기체)인 까닭에 문명의 계승은 생식과정에 의해서 유전되는 것이 아니라, 학습과 모방에 의해서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2) 문명이동론 종래 문명의 기원에 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었다. 일설은 문명이 한 곳에서 발생한 후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였다는 문명단원설(文明單元說, 일명 文明一元說, Theory of plural simple of civilization)이고, 타설은 여러 문명이 제각기 발생(공시 혹은 선후 다발)한 후 나름대로 발달되어 왔다는 문명복원설(文明複元說, 일명 文明多元說, Theory of plural origin of civilization)이다.

문명단원설은 기본적으로 문명의 일방적인 이동에 이론적 근거를 두고 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영국에서 대두된 이른바 ‘맨체스터학파(Manchester School)'가 대표적인 문명단원 이동론자들이다. 그 학파에 속하는 스미스(E. Smith)는 저서 『고대 이집트』(The Ancient Egyptians)에서, 페리(W. J. Perry)는 저서 『문명의 성장』(The Growth of Civilization)에서 각각 문명단원론에 입각한 문화연속설(文化連續說 Theory of culture sequence, 일명 文化接觸說, Theory of culture-contact)을 주장하였다.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문명의 유일한 발상지는 이집트로서, 거기로부터 문명이 세계 각지로 계속해서 이동확산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의 핵심은 문명의 이동이기 때문에 보통 문명이동론()이라고 한다.

  문명단원이동론에 따르면, 문명은 3대 간선을 따라 세계 각지로 이동확산되었다는 것이다. 3대 간선은 다음과 같다.

 

① 문명이동남선(南線): 이 선은 이집트~시리아~홍해~남아라비아 반도~인도~인도네시아~중남미로 이어지는 길이다. 이 남선 지대의 대표적 문화는 태양과 석물(石物)을 숭배하는 양석복합문화(陽石複合文化, Heliolithic Culture)이다.

② 문명이동중간선(中間線): 이 선은 이집트 ~ 메소포타미아 ~ 이란 북부 ~ 중앙아시아 사막지대 ~ 알타이 산맥 ~ 고비 사막 ~ 중국으로 연결되는 길이다. 이 중간선을 위요한 지대의 특징적 문화는 채도(彩陶)문화이다.

③ 문명이동북선(北線): 이 선은 이집트~중앙아시아(러시아 남부)~시베리아~북미로 뻗은 길이다. 이 북선의 고유문화는 즐문토기(櫛文土器)문화이다.

 

위에서 보다시피, 3대 간선을 따라 펼쳐진 지구상의 모든 문명의 발원지는 오로지 이집트로서, 문명은 서에서 동으로 이동한 것으로 된다. 3대 간선은 문명교류의 통로인 실크로드의 3대 간선, 즉 해로(Sea Road)와 오아시스로(Oasis Road), 초원로(Steppe Road)와 그 노정이 대체로 일치한다. 이 문명이동설은 일찍이 ‘한자 서래설’이나 ‘중국문명 바빌로니아 기원설’(일명 바르크족 이주설), ‘채도서래설’ 등에 이용되어 그 '이론적‘ 전거인양 오도되었다.

그러나 20세기 초, 특히 2차 세계대전 이후, 문명의 복원설(複元說)이 밝혀지고, 문명의 개별성(고유성)이 강조됨에 따라 이 이론은 입지를 잃어가고 있다. 물론 문명은 끊임없이 이동하지만, 그것은 결코 일방적인 하향(下向)이동이 아니라 상호이동, 즉 교류인 것이다. 때로는 후진문명에 대한 선진문명의 이동이 일방적 이동으로 비추어지기도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이고 일시적인 기복(起伏)현상일 따름이다. 시간이 흐르면 후진문명이 오히려 선진문명을 추월해 역이동(逆移動)이 일어날 수도 있음을 많은 역사적 사실이 실증해주고 있다.

 

3) 문명순환론 영국의 문명사가 아놀드 토인비(A. J. Toynbee)는 주저 『역사의 연구』(A Study of History, 12, 19341961)에서 세계사를 비교문명론적으로 고찰하는 독특한 문명사관을 제시하였는데, 그 핵심은 문명순환론이다. 토인비는 문명은 도전(challenge)에 대해 성공적으로 응전(response)해야 탄생과 성장이 가능하다는 문명의 도전과 응전 원리를 천명하면서, 이 원리에 따라 문명은 탄생, 성장, 붕괴, 해체의 4단계 사이클(cycle, 주기)을 겪는다는 이른바 문명순환론을 주장하였다.

토인비는 이러한 이론에 준하여 자고로 인류가 창조한 문명을 유형화하였다. 그의 연구에 의하면 인류역사에 알려진 문명은 모두 30개인데, 그 중 정상적인 순환과정, 즉 탄생, 성장, 붕괴, 해체의 4단계를 거친 이른바 성장문명은 21이고, 자연재해나 전쟁 같은 불의의 요인으로 인해 이 과정을 제대로 다 거치지 않고 일부만 거친 정체문명은 5개이며, 탄생 요인을 잉태했다가 태어나지 못한 유산문명은 4개로 보았다. 그런데 이 성장문명 21개 중에서도 이미 살아진 사()문명이 14개이며, 아직 살아있는 생존문명이 7(인도, 이슬람, 극동, 비잔틴, 동남 유럽, 그리스 정교, 서구문명)라고 분석하였다. 이러한 초유의 문명 유형화는 대체적으로 사실에 부합되는 것으로써 문명사 연구에 이용되고 있다. 이것은 토인비의 중요한 문명사적 업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문명의 탄생 요건에 관하여 종래의 통념은 자연환경의 유리한 곳에서 탄생이 가능하다는 것이었으나, 토인비는 이와는 반대로 오히려 자연환경이 불리한 것이 문명 탄생의 필요조건이라고 보았다. 왜냐하면 불리한 환경은 일종의 도전이므로, 이러한 도전에 응전해 극복할 때만이 문명은 탄생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고대 4대 문명을 탄생시킨 4대 강 유역은 모두가 범람이나 건조, 고온 같은 악조건 지역이어서, 인간이 고도의 지혜를 발휘하여 그러한 도전을 성공적으로 극복하는 과정에서 고대 4대 문명이 비로소 탄생하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그는 이러한 성공적인 응전의 요인은 인간의 창의력이라고 하면서, 창의력이 있는 인간만이 도전을 이겨내고 문명을 탄생시킬 수 있다고 하였다.

   토인비는 탄생한 문명의 성장도 도전에 대한 응전이 성공해야 가능하며, 그러한 성장은 단순한 영토의 확장이나 경제적 및 기술적 발전만은 아니고, 보다 중요한 것은 정신적 승화(etherealization)로 보았다. 이러한 승화과정은 자기결단(self-determination)과 자기천명(self-articulation)의 과정이며, 그 과정에는 일시적 후퇴(withdraw)와 복귀(return)가 수반하는데, 복귀에 의해서만 승화가 실현된다. 이러한 복귀에서 일부의 창조적 소수가 큰 역할을 담당하며, 이때 대중은 이 창조적 소수의 견해와 태도를 흉내(mimésis), 즉 모방하거나 추종한다. 그러다가 이러한 창조적 소수가 지도력이 결핍하여 대중으로부터의 매력을 상실한 나머지 대중에게 맹목적인 복종과 충성심을 강요하는 방법으로 지배권을 유지하려 한다면, 이때부터 문명은 붕괴기에 접어들게 된다. 이점에서 대중의 맹목적 복종을 건전한 문명의 상징으로 본 쉬펭글러(O. Spengler)와는 관점을 달리하고 있다.

이와 같이 창조족 소수(지도자)에 대한 자발적 대중의 ‘흉내’가 기계적 모방이나 강제적 훈련으로 변화했을 때, 문명의 붕괴가 일어나는데, 이것 역시 지도자가 도전에 대한 응전에서 실패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대중은 지도자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적대적 태도를 취하게 되는데, 이를 토인비는 ‘내적 프롤레타리아트’(inner proletariat)라고 하였다. 그러면 급기야는 정치적 분열이 심화되고 사회적 통일이 파괴되어 문명은 붕괴되고야 만다.

문명의 붕괴는 결국 문명의 최종단계인 해체로 결속되는데, 때로는 강력한 재기(rally)가 시도되어 붕괴가 그만 중지되어 해체가 아닌 장기적인 화석기(化石期)가 도래되는 경우가 있다. 토인비는 이집트와 동양문명이 바로 이런 경우라고 여겼다. 이 단계에서는 내적 프롤레타리아트와 함께 외부로부터의 적대적 행위인 외적 프롤레타리아트(external proletariat)의 도전도 받게 되어 사회는 수평적 분열과 수직적 분열을 동시에 겪음으로써 해체가 촉진된다. 또한 이 단계에서는 창조성은 자포자기나 자기억제로, ‘흉내’는 보이코트나 순교로 변하여 결국 영혼의 분열도 일어난다. 그 결과 복고주의나 미래주의, 유토피아적 초현실주의 등 각종 도피주의가 만연하며, 그 와중에서 이른바 ‘구세주’가 출현한다.

뿐만 아니라, 이 단계에서는 적대국가나 적대사상간에 전쟁이 발발하게 마련인데, 그 전쟁에 기진맥진한 대중은 세계국가나 평화를 갈구하게 된다. 이 문명의 해체기나 화석기가 지나서 새로운 문명이 탄생하기까지는 상당히 긴 ‘밤’을 보내게 되는데, 토인비는 이 기간을 ‘공위시대’(空位時代, interregnum)라고 부른다. 이 시대에는 민족이동과 대중운동이 끊임없이 되풀이되며 영웅호걸들이 등장한다. 그래서 일명 ‘영웅시대’(heroic age)라고도 한다. 그는 또한 이 시대를 약 4백 년 동안 지속되는 ‘고난의 시기’(a time of troubles)라고도 표현한다. 이 공위시대의 혼란 속에서 새로운 문명의 여명은 밝아온다.

토인비는 1차 세계대전의 발발을 계기로 현대사와 유럽문명의 장래에 대한 위기의식을 절감하면서 투키디데스에 관한 연구를 하다가 고대 그리스사와 현대사와의 사이에 유사성, 즉 철학적 동시대성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가 느끼는 역사적 위기의식이 투키디데스가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느낀 역사적 위기의식과 너무나도 유사하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리하여 그는 세계사의 비교문명론적인 접근을 시작하여 마침내 도전과 응전의 원리에 의한 문명순환론을 창안하게 되었다.

그는 문명의 동시대성과 유형화 및 순환론을 밝힘으로써 문명사 연구의 새로운 방법론을 안출하였으며, 문명 필멸이라는 비관주의를 지양하고 순환에 의한 문명의 재생이란 낙관주의적 역사관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그가 거대한 세계역사의 흐름을 도전과 응전에 의한 순환이란 단순하고 교조적인 논리로 설명하는 것은 일종의 사변적 역사철학에 불과하며, 또 한 그가 창조적 소수(지도자나 영웅)의 역할을 과대평가하고 ‘신의 법칙’에 의한 인간의 응전과 인간으로 화신한 신에 의한 해체기 문명의 구제 같은 주장은 관념론적 사관으로서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3. 현대적 문명담론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근대적 문명담론은 주로 정형화된 구조로서의 문명 자체의 탄생이라든가 성장, 멸망 내지는 이동에 관한 담론이다. 그러나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전래의 상투적 대립구조 속에서는 더 이상 인류의 공생공영을 추구할 수 없다는 자성이 일면서 새로운 생존 패러다임을 모색하기에 이른다. 그 결과 갈등과 대각만을 양산해 온 국가나 민족, 정치나 경제, 이데올로기 등의 기반(羈絆)에서 벗어나, 그 모든 것을 아우르고 조화시킬 수 있는 공분모적 복합체인 문명과 그 상호관계에서 소기의 대안과 해법을 강구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그러한 관계의 성격이나 설정에 대한 이해에서는 아직 시각이 크게 엇갈리며, 여러 가지 이론이 분분하다. 이것이 바로 현대적 문명담론이다.

20세기 후반 냉전시대의 마감으로 평화와 안전을 기대하던 인류가 민족분쟁이나 종교분쟁, 국지전쟁 같은 예기치 못했던 새로운 유형의 국제적 분란에 휩쓸리자, 그 대응논리나 분석의 틀로 이러저러한 문명담론이나 패러다임이 등장하였다. 그러나 아직은 초보적 시론단계에 불과하다. 동방에 대한 서방의 지배주의적 사고방식을 갈파한 에드워드 사이드( Edward W. Said)의 ‘오리엔탈리즘’을 비롯해 동서방 서로를 타자화(他者化)한 담론을 시작으로 새뮤얼 헌팅턴(Samuel P. Huntington)의 ‘문명충돌론’과 이를 정면으로 비판하여 나온 하랄트 뮐러(Harald Müller)의 ‘문명공존론’, 필자가 입론을 시도하는 ‘문명교류론’은 그 대표적인 담론들이다. 동서방간의 타자화 담론은 서로의 관계담론이라기보다는 인식론적 차원에서 균형 잡힌 서양의 동양 ‘만들기’와 동양의 서양 ‘만들기’를 지향하는 담론이며, ‘문명공존론’은 문명의 충돌에 반한 다원적 문명의 공존을 설파하는 담론이라는 데서는 분명 진일보한 담론이다. 그러나 단순한 인식론과 공존을 뛰어넘은 실천적 조화의 문명관계까지는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와 같이 타자론이나 공존론은 문명의 관계담론치고는 미숙이나 한계를 면치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학문적 정립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형편이다. 이에 비해 헌팅턴의 ‘문명충돌론’은 현대적 문명담론 중에서 그야말로 ‘태풍의 눈’으로 떠올라, 5대양 6대주’ 사람들이 읽고는 “감동을 받고, 호기심을 느끼고, 분개하고, 위기감을 느끼고, 당혹스러워하였다” 그 여진은 오늘날까지도 사계의 문명담론을 강타하고 있다. 그리하여 본고에서는 헌팅턴의 ‘문명충돌론’을 집중적으로 다루려고 한다. 아울러 현대적 문명담론에서 그 대안적 담론으로 간주되는 ‘문명교류론’에 관해서도 논급하려고 한다.

지금까지 슈펭글러(O. Spengler, 18801936)나 토인비같이 문명으로 세계역사를 설명하는 역사가나 문화인류학자, 철학자는 있었지만, 헌팅턴처럼 정치가가 문명으로 국제정치를 재량(裁量)한 전례는 거의 없다. 이것은 지난 수세기 동안 오로지 국가만을 단위로 하여 국제정치를 분석하고 이해해 오던 국제학계에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으며, 따라서 헌팅턴의 문명 패러다임이 새로운 시도임에는 틀림이 없다.

헌팅턴은 1993년 여름 ‘국제정세’(Foreign Affairs)지에 「문명의 충돌 ?」이란 논문을 발표했는데, 즉각 세계적인 큰 반향과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그러자 연이어 몇 편의 관련논문을 발표했으며, 그것을 『문명의 충돌과 세계질서의 재편』이란 저서에 한데 묶어 1996년에 출간하였다. 헌팅턴의 이른바 ‘문명충돌론’이 이 저서에 집약되어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새로운 세계에서는 문화적 동질성이 한 나라의 우방과 적국을 규정하는 본질적 요인이다. 냉전구조에 편입되는 것은 피할 수 있었지만 국가가 문화 정체성 없이 존재할 수는 없게 되었다. ‘너는 어는 편인가?’라는 물음은 ‘너는 누구인가?’ 라는 훨씬 근원적인 물음으로 바뀌었다. 모든 나라는 이 물음에 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답변, 곧 한 나라의 문화적 정체성이 세계정치에서 그 나라가 차지하는 위치, 그 나라의 친구와 적수를 규정한다., “문화가 중요성을 갖는 세계에서 소대는 종족, 중대는 민족, 군 전체는 문명에 해당한다.” 이 두 문장에서 그가 주장하는 ‘문명충돌론’이란 과연 무엇인가가 확연하게 드러난다. 그 기본내용은 오늘의 탈냉전 시대에는 지금까지 부상되지 않고 있던 정치나 경제 외적 가치인 역사나 조상, 언어, 종교 같은 문명적 요소(‘문화적 동질성’, ‘문화 정체성’)와 그 충돌이 세계를 움직여가는 핵심 변수가 된다는 것이다.

   헌팅턴은 이 책의 서문에서 자신의 저서가 ‘사회과학서’가 아님을 밝히면서, 국제정세의 추이를 통찰하기 위해 그가 제시한 ‘문명충돌’이란 패러다임은 그 어떤 패러다임보다도 ‘더 의미 있고 유용한 렌즈를 제공할 것’이라고 자부한다. 그러나 그는 그 ‘유용성’을 20세기 말과 21세기 초의 세계정세를 이해하는 데로 한정하고 있다. 그 역시 그의 이론은 보편 타당한 것이 아니라, 한시적인 것임을 자인하고 있다. 아무튼 그의 이론은 새로운 국제정세 속에서 문명을 중시하고 문명담론을 정면화하였다는 점에서는 일정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문명충돌론’은 몇 가지 근본오류를 내포하고 있다.

그간 그러한 오류에 대해서 논쟁도 많았고 비판도 치열했지만, 그 대부분은 정치학적 시각에서의 논쟁이고 비판이었다. 물론 그러한 논쟁과 비판 중에는 적절한 내용도 없지 않아 있기는 하지만, 정곡(正鵠)을 향한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속성이 서로 다른 문명과 정치가 견강부회적(牽强附會的)으로 어설피 상대했기 때문이다. 조화와 상생을 공분모로 하는 문명은 문명으로 접근하고 이해해야 하지, 대결과 상극을 통념으로 하는 정치로는 결코 접근할 수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것이다. 차원이 다른 문명과 정치의 상호대입은 언필칭 논리상의 무리가 아닐 수 없다. 그러다 보니 헌팅턴 자신도 그렇거니와, 평론자들도 문명이란 기본개념에서부터 그 속성이나 상호관계에 이르기까지 이해나 전개에서 혼미와 모순, 착오가 일어나지 않을 수 없다.

헌팅턴의 ‘문명충돌론’을 그가 착안한 정치학이 아닌, 문명 본연의 시각에서 통찰하면 적어도 다음의 세 가지 측면에서 이론적 및 실천적 오류를 발견하게 된다.

그 오류는 첫째로, 복합적인 문명 개념을 단순한 가치체계로 축소했다는 데 있다. 그는 문명의 개념을 가치체계, 그것도 주로 종교가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종교가치체계로 축소하고 단순화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종교를 일차적 기준으로 하여 1993년에 발표한 첫 글에서 세계문명을 ①기독교, ②정교, ③이슬람교, ④유교, ⑤불교, ⑥힌두, ⑦아프리카(비이슬람권), ⑧일본 등 8대 문명으로 구분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문명 유형화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일자, 3년 후에 펴낸 책에서는 ①중화, ②일본, ③힌두, ④이슬람, ⑤정교, ⑥서구, ⑦라틴아메리카, ⑧아프리카 등 8대 문명으로 수정하였다. 그는 종래의 ‘유교문명’을 ‘중화(Sinic)문명’으로 개칭하면서 여기에 해외 화교공동체와 베트남, 한국을 포함시켰다. 그리고 ‘기독교문명’은 ‘서구문명’과 ‘라틴아메리카문명’으로 2분하였다. 그런가 하면 불교는 탄생지 인도에서 소멸되고 중국과 일본 등지에서 이미 토착문화에 통합되어 ‘거대 문명의 바탕’이 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문명에서 아예 제외시켰다. 불과 3년을 사이에 두고 헌팅턴의 문명관은 이렇게 오락가락한다. 여기서의 문명 유형화는 분명히 문명권 분류이다. 그는 ‘기독교’를 ‘서구’와 ‘라틴아메리카’로 나누고, 불교를 제외시킴으로써 종교의 개입을 희석시키려고 시도한 것 같지만, 종교를 ‘문명을 규정하는 핵심적 특성’으로, ‘문명이 의지하는 토대’로 인지하면서 여전히 문명 유형화에서 종교를 절대적 기준가치로 삼고 있다.

문명이나 문명권의 이러한 유형화야말로 문명사에서는 전무후무한 ‘독창’이다. 원래 문명권이란 공통된 문명요소들을 공유한 문명의 역사 문화적 및 지역적 범주를 말하는 것으로서, 그러한 문명권은 문명 구성요소의 특수성과 시대성 및 지역성이 보장되고 생명력이 유지되어야 비로소 형성 가능한 것이다. 정신문명과 물질문명의 여러 분야를 두루 아우르는 포괄적 문명을 어떤 개별 분야에 한정시키거나, 그 구성요소들을 단순화시키는 것은 문명의 본연에 어긋난다. 사실 문명의 구성요소로 본다면, 순수한 종교보다는 종교를 바탕으로 한 복합적 종교문화를 염두에 두어야 하지, 헌팅턴과 같이 이질성과 갈등의 소지가 많은 종교만을 거론하니 결코 문명을 충돌의 화신으로밖에 오해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종래 중국의 천하 중심과 모화사상을 대변함으로써 이미 역사의 퇴물이 된 소위 ‘중화(中華)’ 개념을 문명에 끌어드리는 것은 실로 어불성설이다. 더욱이 망측한 것은 일본을 하나의 문명권으로 설정한 기상천외한 발상이다. 헌팅턴은 그 원인에 관해서는 한마디로 일본문화의 ‘특수성’을 들고 있다. 그는 기원후 100년에서 400년 사이에 중국문명의 영향을 받아 출현한 일본문명은 ‘독자적’ 문명이라고 단정하면서, “가장 중요한 고립국 일본은 일본문명의 유일한 국가이자 핵심국이다. 일본의 특이한 문화를 공유하는 국가는 전혀 없으며 일본에서 외국으로 이주한 사람들은 그 나라에서 극히 소수에 머물러 있거나 아니면 그 나라의 문화에 동화되었다.”라고 해석한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은 7080년대 국세가 급상승하면서 일본 지식계가 부르짖던 ‘탈아입구(脫亞入毆)의 추세와 맥을 같이한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일본이 제아무리 일탈(逸脫)에 몸부림을 친다해도 운명적으로 ’재아시아화‘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헌팅턴의 문명 단순화나 축소화는 문명에 대한 그의 편단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는 “문명은 언어, 역사, 종교, 관습, 제도 같은 공통된 객관적 요소와 사람들의 주관적 귀속감 모두에 의해 정의된다.”고 하면서, “어떤 문명이나 문화에서든 가장 핵심이 되는 요소는 언어와 종교다.”라고 언어와 종교를 극구 강조한다. 그리하여 그는 주로 종교나 언어, 역사나 관습, 제도(그는 ‘객관적 요소’라고 했지만), 그리고 귀속감 같은 주관적 요소들을 문명으로 정의하였다. 이것은 문명을 인간집단의 생활양식의 총체나 노동을 통해 얻은 결과물의 총체로 보는 ‘총체론적 전망’(totalist view)과는 상치되는 관념론적 전망(mentalist view)으로서, 뮐러가 지적한대로 헌팅턴은 문명을 독일식 전통적 문화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문명 개념을 주로 종교체계 같은 관념론적 가치체계로 단순화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그는 또 “문명과 문화는 모두 사람들의 총체적 생활방식을 가리키고 있다., “문명은 가장 광범위한 문화적 실체다.”라고 표현함으로써, 문명에 대한 이해에서 총체론적 전망을 따르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그리고 문명과 문화를 총체와 개체 관계로 구분 짓는 것 같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겨우는 혼동하고 있다. 한마디로 문명에 대한 헌팅턴의 이해는 천방지축 오리무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명충돌론’이 내포한 두 번째 오류는 문명 간의 차이를 문명 본연의 ‘충돌’인양 착각하고 문명 간의 상생관계(相生關係)를 상극관계(相剋關係)로 오도한다는 데 있다. 헌팅턴은 현대 세계에서 문화집단들 사이의 갈등이 커짐에 따라 그러한 갈등이 세계정치에서 “점점 중요한 뜻을 갖는다.”고 하면서, 그러한 갈등과 충돌의 원인은 종교들 간의 관계를 포함한 모든 ‘문화적 사안들은 전부 (全部) 아니면 전무(全無), 다시 말하여 제로섬 선택의 문제’이기 때문으로 설명한다. 즉 이질문명간의 관계는 절충이나 조화를 할 수 없는, ‘이것이 아니면 저것’이라는 수화불상용적(水火不相容的) 상극관계임으로 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예컨대, 프랑스 학교들에서 이틀에 한 번씩 무슬림 여학생들에게 이슬람의 고유 의상을 입고 등교할 수 있게 하는 ‘절충안은 프랑스 당국이나 무슬림 학부형 모두가 받아들이지 않을 공상이 크다’는 것이다.

   그러한 충돌의 또 다른 원인을 헌팅턴은 이른바 ‘분쟁의 보편성’에서 찾고 있다. ‘증오는 자연스러운 인간의 감정’이며, ‘사람들이 스스로를 정의하고 행동욕구를 느끼기 위해서는 적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분쟁의 보편성’ 논리다. 그래서 정치에서 적용되는 ‘우리’와 ‘그들’이라는 대립구조가 문명에서도 그대로 적용된 결과 “냉전의 종식은 분쟁을 종식시킨 것이 아니라, 문화에 뿌리를 둔 새로운 정체성..... 상이한 문화에서 유래한 집단들 사이의 새로운 갈등양상을 낳았다.”고 그는 진단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헌팅턴은 국제적 무역이나 교류는 국제적 유대나 협조를 결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분열과 분쟁을 야기할 소지가 있다고 판단한다. 그는 1980년대 국제무역량이 세계 총생산액의 15퍼센트밖에 안되었는데도 90년대의 냉전 종식을 가져왔는데, 1913년에 그 비율이 무려 33퍼센트였지만 이듬해에 세계대전이 발발했다는 사실을 예로 들면서, “무역과 교류가 평화나 유대감을 조성하는 데 실패한다는 것은 사회과학에서 밝혀진 사실과 맥을 같이한다.”고 학문적 근거까지 들먹이고 있다. 그가 말한 ‘사회과학에서 밝혀진 사실’이란 사회심리학에서의 변별이론(distinctiveness theory)과 사회학에서의 세계화이론을 염두에 두고 있다.

특정한 상황 하에서 사람들은 타인과 자신을 구별함으로써 스스로를 정의한다고 하는 변별이론을 문명교류에 적용해서 “통신, 무역, 여행의 증가로 문명과 문명의 접촉이 비약적으로 늘어나면서 사람들은 차츰 자신들의 문명적 정체성에 더 큰 중요성을 부여한다.”고 지적한 것은 정당하나, 그 중요성으로 인해 타문명과의 갈등이 가중된다는 것은 ‘헌팅턴식 충돌론’일 따름이다. 그는 20세기 후반 이슬람과 서구의 갈등이 증폭된 배경의 하나로 두 문명 간의 접촉과 교섭이 잦아지면서 자신의 정체성과 차이를 인식하게 된 것을 지목하고 있다. 여기서 한 가지 부언하고자 하는 것은, 그가 앞에서 언급한 국제무역과 세계생산 간의 비율에 의한 국제정세의 변화 논리는 제국주의와 식민지의 양극화가 심했던 시대의 일방적이며 독점적인 국제무역과 오늘날 다극화다중심시대의 다국적 균형교역간의 근본적인 차이점을 간과한 데서 나온 부당한 논리이다.

헌팅턴의 문명 상극논리를 종합해 보면, 문명 간의 차이는 근본적이고, 문명 간의 ‘상호작용’(즉 교류)은 상호차이를 강화하며, 문화적 차이는 정치나 경제, 이념적 차이보다 변화하기 어렵기 때문에, 한마디로 문명 간의 차이 때문에 서로의 충돌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문명의 근본속성인 자생성과 그에서 파생되는 보편성과 개별성(차이성), 그리고 문명교류에 대한 무지의 소치이거나 왜곡인 것이다. 문명은 인류 공동의 창조물이고 향유물이며 소유물로서 상부상조에 의해 공존한다. 따라서 문명의 절대적 독점이나 우월은 있을 수 없으며 문명 간의 교류는 필연이다. 절대적 독점이나 우월이 없는 문명 간의 교류는 다름에서 오는 일시적 갈등이나 모순을 평화적으로, 순기능적으로 극복하면서 점진적으로 실현된다. 문제는 생태적으로 없는 충돌을 인위적으로 있게 하거나 있다고 보는 데 있다.

끝으로, 문명충돌론이 노정한 세 번째 오류는 지구촌의 분란을 숙명화한다는 것이다. 냉전시대 이후 새 세기를 맞는 인류의 공동염원은 평화와 안전이다. 그런데 헌팅턴은 문명 간의 단층선에서 문명충돌이 불가피하게 일어난다고 주장함으로써 지구촌의 분란에 불가피성을 부여하고, 인류의 항구적 평화염원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헌팅턴의 ‘문명충돌론’을 심층 분석해 보면, 그의 ‘충돌론’에는 허구적 2중 잣대가 적용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세력이 약하여 서구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라틴아메리카나 아프리카 문명과는 갈등의 소지가 적음으로 원만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으며, 러시아나 일본, 인도 문명은 이미 서구에 대한 도전에서 실패했기 때문에 우려할만한 갈등은 없이 협력의 요인을 안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도전의식이 강한 이슬람문명과 중화문명의 성장, 그리고 그들 간의 제휴는 서구와 미래 세계에 대한 가장 큰 위협요인으로서 심각한 충돌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문명 간의 갈등이나 충돌 여부는 문명의 본연에 기인된다기보다는 서구와의 정치적 역학관계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이다. 그의 문명 '논리‘와는 자가당착적(自家撞着的), 순수 정치적 안보논리에 불과하다.

그는 서구문명에 대한 이슬람문명과 중화문명의 도전을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서구는 도전의식이 강한 이슬람문명, 중국문명에 대해서는 늘 긴장감을 느끼며, 이들의 관계는 대체로 적대적이다. ····· 이슬람과 중국은 판이한 문화적 전통을 가지고 있지만 둘 다 서구에 대한 크나큰 우월의식을 가지고 있다. 이 두 문명의 실력과 자긍심은 서구와의 관계에서 나날이 늘어나고 있으며, 가치관과 이익을 둘러싼 서구와의 충돌 역시 다각화되며 심화되고 있다.” 이른바 이슬람의 비관용(intolerance)과 중화의 자기주장(assertiveness)에 기초한 도전은 결코 충돌로 이어질 수밖에 없을진대, 여타 6개 문명권은 합종연횡(合縱連衡)하여 집단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 ‘문명충돌론’이 추구하는 궁극적 목표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저서의 많은 부분을 할애해 이슬람문명에 관해 언급하고 있는데, 한마디로 이슬람문명을 매우 호전적인 문명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는 ‘검을 앞세운 종교’, 타종교와의 화합 불능성, 강한 자존심, 갈등을 조정할만한 핵심세력의 부재, 인구 격증 등으로 이슬람의 폭력성 원인을 설명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20세기 후반 이슬람과 서구의 갈등이 증폭된 배경으로는 무슬림 인구의 증가와 대규모 실업자의 발생, 무슬림의 자기 문명에 대한 자긍심 회복, 경제적 및 군사적 우위를 고수하면서 이슬람세계의 분쟁에 간여하려는 서구의 시도, 공적 공산주의의 소멸로 인해 서로가 최대의 위협이란 인식, 두 문명의 접촉과 교섭의 증가로 인한 서로의 정체성과 차이의 확인 등등을 꼽고 있다. 20세기 후반 이슬람과 서구간의 갈등이 더욱 심각해지는 배경에 관한 분석에서 무슬림들의 자긍심 회복이나 서구의 간섭 시도 등은 가당한 지적이나, 이슬람을 근본적으로 폭력의 종교로 보는 것은 명백한 왜곡이다.

헌팅턴은 중화의 자기주장이 또 하나의 위협요인으로서 서구와의 충돌을 야기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중화문명의 경제력이 커지면 자기주장이 강해질 것이고, 그것은 결국 서구와의 문명충돌로 이어질 것이라는 것이 헌팅턴의 논리이다. 이 논리대로라면 서구와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서는 중국을 포함한 비서구는 자박 자승하여 경제발전을 포기해야한다.

이로써 헌팅턴이 주창하는 ‘문명충돌론’의 본질과 지향성, 그리고 그 허상이 명백해진다. 그의 논리대로라면 문명이 있는 한, 문명을 발전시키려고 하는 한, 충돌은 불가피하게 된다. 그러면 결국 인류의 공생공영을 담보하는 보편적 가치이며 공분모인 문명은 항시 각축장으로 변할 수밖에 없으며, 지구촌의 분쟁과 충돌은 당위적인 것으로 낙인 될 것이다.

차제에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사회공론은 차체하고 우리의 학계에도 이 ‘문명충돌론’의 여파(혹은 지지)가 상당한 진폭으로 퍼져있다는 사실이다. 얼마 전 모 일간지와 모 대학 NGO대학원이 합동으로 이른바 ‘문명충돌 현장’을 답사 취재한 바 있다. 그 중에는 현대의 북경과 전통의 곡부(曲阜, 공자의 고향)를 ‘문명충돌’의 두 현장으로 등장시키고 나서는, 앞으로 서구문명에 맞설 가장 강한 세력으로 중국을 꼽은 헌팅턴만큼 최근 중국의 자존심을 살린 인물은 없다고 평가한다. 그런가 하면 “물질과 종교, 이데올로기는 이해관계와 신념의 차이 때문에 충돌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는 결론으로 시리즈를 마감하였다. 9.11 테러와 이라크 전쟁을 기독교문명과 이슬람문명간의 충돌로 해석하는 것은 바로 ‘문명충돌론’의 영향 소치라고 봐야 할 것이다.

 

. 문 명 교 류

 

1. 문명교류의 당위성

문명은 자생성과 함께 모방성이란 고유의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생성과 발달은 필히 타문명과의 교류를 수반한다. 그런데 이러한 교류는 임의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여건 하에서 소정의 과정을 거쳐 진행된다.

문명교류란 구성요소를 달리하는 문명(이질문명)간의 상호 전파와 수용을 말한다. 문명교류는 문명이 지니고 있는 근본속성의 하나인 모방성으로 인해 불가피하게 진행되는데, 그 구체적인 과정은 문명의 전파와 수용에 의해 실현된다. 바로 이러한 속성 때문에 문명교류는 물리적 거리나 여러 가지 인위적 장애를 무릅쓰고 간단없이 진행된다. 교류 속에서 개개의 문명은 자신의 자생성을 다른 문명에 대한 모방성과 결합시키면서 자체의 고유문명을 키우고 살찌워 나간다. 이것이 바로 문명발달의 통칙이다. 따라서 교류사 연구에서는 문명의 속성과 문명교류의 특성을 올바르게 파악한 토대 위에서 여러 문명집단(문명권)간에 이루어진 문명교류의 과정과 성격, 그리고 결과를 면밀히 검토구명함으로써 인류 공동의 문명 창달에 기여하여야 한다.

문명교류의 특성을 포괄적으로 구현하고 있는 것이 동서문명교류이다. 넓은 의미에서의 동서문명교류란 신구대륙의 광활한 지역에서 발생한 여러 문명이 시공간적 한계를 넘어 서로 교류하고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상호의존적으로 발전풍부화되어 가는 문명발달 과정을 말한다. 고대에는 오리엔트 문명을 비롯해 중국과 인도, 그리스, 로마, 페르시아 등 고대국가들에서 고전문명이 개화함으로써 동서문명교류가 비로소 시작되었다. 그러다가 중세에 이르러서는 이른바 ‘신대륙’의 발견과 이에 따른 환지국적(環地球的) 문명통로인 실크로드의 개척과 더불어 이러한 문명교류는 구대륙(유라시아와 아프리카)에서 이른바 ‘신대륙’인 아메리카 대륙으로 확대되어 명실상부한 범세계적 문명교류가 이루어졌다. 이 범세계적인 문명교류는 단순한 방향적(공간적) 개념에서 동양(동방)과 서양(서방)간의 단선적이고 일방적인 교류가 아니라, 지구의 동서남북방을 두루 아우르는 전 인류문명의 복선적이고 망상적(網狀的)인 상호교류로 그 폭이 부단히 확대되었다.

문명은 모방이라는 근본속성으로부터 산생되는 전파성과 수용성으로 인해 그 교류가 불가피하다. 따라서 어떠한 물리적 힘도 이 당위적인 문명교류를 차단할 수는 없다. 간혹 외연적(外延的)인 요인으로 인해 교류가 잠시 정체되는 현상이 발생할 수는 있으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우발에 불과하며 영원한 정지란 있을 수 없다.

문명의 전파성이란 일단 창조된 문명은 물리적 거리나 인위적 장애에도 불구하고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간에 주위에 조만간 보급확산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명의 전파는 문명교류의 필수적 과정으로서 그 양태에 따라 교류상이 좌우된다. 전파성에 대응되는 문명의 수용성이란 전파된 문명이 피전파 문명에 합류정착되는 것을 뜻한다. 다른 문명이 수용될 때만이 실질적인 문명교류가 실현되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에 문명의 수용은 문명교류의 징표라고 말할 수 있다. 아울러 다른 문명에 대한 수용성 때문에 문명교류는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문명교류는 또한 문명의 다른 근본속성인 자생성에서도 그 당위성을 찾아볼 수 있다. 그것은 문명교류가 자생성에서 산생되는 보편성과 개별성에 의해서 보장되기 때문이다. 문명의 보편성(공통성)이란 같은 환경이나 여건 하에서는 물론, 때로는 다른 환경이나 여건 속에서도 시공을 초월해 내용과 형태에서 유사한 문명이 창조된다는 것을 뜻한다. 인류는 언제나 보편성에 기초한 문명의 공유를 염원하는데, 이러한 보편성의 형성은 문명교류가 그 첩경이 될 수 있다. 이에 비해 문명의 개별성(고유성)이란 매개 문명이 자기 특유의 개성을 가지고 다른 문명과 구별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개별성은 문명 간의 이질성을 조건지어주기 때문에 문명교류의 결정적 전제가 된다.

문명교류는 본질적으로 서로 다른 문명(혹은 문명권)간의 교류로서 ‘서로의 다름’이야말로 문명교류의 전제인 동시에 필수적인 요인이다. 이러한 ‘서로의 다름’을 인지하고, 그에 대한 불편부당한 타자론적(他者論的) 및 상대주의적 입장을 취할 때만이 진정한 의미의 문명교류가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포괄적인 동양문명과 서양문명간의 상차(相差)에서 이와 같은 문명교류의 당위성이 입증됨과 동시에, 그 상차에 대한 합리적인 이해가 절실함을 간파하게 된다.

   원래 인간은 동양인이건 서양인이건 간에 생물학적으로는 같은 종(, 엄격히 말하면 Homo sapiens sapiens라는 亞種)에 속하여 같은 지수의 뇌 용량을 가지고 생겨난 후 변하지 않는 육체적 속성뿐만 아니라, 인간의 본성이라는 변하지 않는 정신적 속성도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자연환경이나 인문환경이 달라짐에 따라 서로 다른 문명을 창출하고 말았다. 동양과 서양간의 문명적 격차가 바로 그 대표적인 일 예이다.

공자의 인()이나 예수의 사랑, 석가의 자비나 무함마드의 형제애가 같은 맥락의 도그마적 가르침이기는 하나, 동양과 서양의 서로 다른 역사적 환경 속에서 그 설명과 치장은 그토록 다를 수가 없다. 정신문명의 측면에서 볼 때, 대저 절대적배타적원심적능동적외향적논리적분석적개인적인 것이 서양문명이라면, 동양문명은 상대적포괄적구심적수동적내향적직관적종합적관계적인 것이어서 정말로 음과 양처럼 대조적이다. 요컨대, 동은 동대로, 서는 서대로의 사고와 행동양식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대조관계를 자연계의 수화불상용적 관계처럼 보아서는 안 된다. 다만 이것은 다름에서 오는 대조관계일 뿐이다. 이러한 대조관계를 우열관계로 오인하여 ‘선진서양’이니 ‘후진동양’이니 운운하거나, 또는 이러한 대조관계를 절대관계로 착각하여 서로의 만남이나 섞임을 부정하는 것은 일종의 단견이고 편단이다.

작금 ‘선진서양’이니 ‘후진동양’이니 하는 발상은 주로 근세(최근 2백년간)에 와서 서양의 기술문명이 앞질러가고, 이에 부수된 이른바 서구문명 ‘중심주의’이나 ‘우월주의’ 잔영이 은연 중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역사에서 부침(浮沈)되는 일종의 기선(機先, forestáll)현상일 따름이다. 돌이켜보면, 5천년 인류문명사는 그 활동무대에서 동과 서가 서로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만나고 나누는, 즉 문명교류의 역사이다. 문론, 자생문명도 있지만, 그것도 근원적으로 보면 교류를 통해 외래문명과 상관된 경우가 다반사이며, 문자그대로의 순수문명이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문명교류사 연구는 이질문명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한다. 인류가 문명의 발달에 능동적으로, 성공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이질문명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인류의 미래는 생물학적 진화보다 상호의존적인 문명의 발달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게 될 것이다. 지난 시기 협애한 편견 때문에 서로에 대한 이해를 소홀히 하였거나 포기한 것이 사실이었다. 주지하다시피, 13세기 마르코 폴로는 동방에 와서 직접 견문하고 체험한 여러 가지 문명 업적들을 『동방견문록』이란 여행기에 실감나게 소개하였다. 그러나 서양인들은 당대는 물론, 그 후 수세기 동안 그 내용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폴로가 임종을 앞두었을 때, 그의 친구들이 영혼의 평화를 위해 이 견문록에 수록된 ‘거짓말’들을 회개하라고 권유하였다. 그러자 폴로는 한숨을 몰아쉬며 회개는커녕, 오히려 그가 본 동양의 놀라운 일들을 절반도 기술하지 못했다고 못내 아쉬워하면서 눈을 감았다. 그런가 하면 그로부터 5백년이 지난 뒤 절대정신을 파악했다고 자부한 철학자 헤겔조차도 “중국이란 존재한다는 것 외에는 중국에 대하여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였다.”고 고백했으니, 근세까지도 이질 문명 간에 있어왔던 격색성(隔塞性)을 가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질문명에 대한 이해는 문명 각개에 대한 이해를 뜻한다. 또한 서로의 비교연구에 의한 이해를 수반하기도 한다. 이러한 비교연구는 문명 교류사 연구에서 필수이지만, 이질문명 자체의 심층적 연구를 위해서도 유효한 연구방법이다. 그리하여 종래 많은 학자들, 특히 문명사학자들은 비교론적 관점에서 이질문명의 발생발전과 상호영향관계를 다각적으로 모색하여 왔다. 모색의 초점은 이질문명의 상이성과 그 연원의 해명이다. 즉 생물학적으로 같은 종에 속하는 서로 다른 인간이 창출한 문명이 어떻게 서로 다르며, 또 왜 그럴 수밖에 없는가 하는 문제이다.

 

2. 문명교류와 문명권

일반적으로 문명교류는 이질문명으로 경계 지어지는 문명권 사이의 교류를 의미한다. 물론 같은 문명권 내의 교류도 문명교류(사실은 문화교류)의 범주에 속하기는 하지만, 보다 확실하고 효과적이며 상보상조적인 교류는 문명권간의 교류이다.

문명권이란 문명의 전승이나 전파를 통해 이루어진 공통적인 문명구성요소를 공유(共有)한 여러 국가나 민족, 지역을 망라하여 형성된 문명의 역사적 및 지리적 범주를 말한다. 그러나 공통적인 문명구성요소를 공유한다고 하여 모든 문명이 곧바로 하나의 문명권을 형성하는 것은 아니다. 한 문명권이 형성되려면 다음과 같은 3가지 요건을 구비하여야 한다.

 

1) 문명의 구성요소에서 독특성(상이성)이 있어야 한다. 즉 다른 지역 문명과 구별되는 일련의 문명구성요소들을 공유해 한다.

2) 문명의 시대성과 지역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즉 시대적으로 장기간 존속해야 하고, 지역적(공간적)으로 한정된 국가나 민족의 범위를 벗어나서 비교적 넓은 지역에 유포되어야 한다.

3) 문명의 생명력이 유지되어야 한다. 즉 장기간에 걸쳐 지역사회 전반에 영향력을 지 속적으로 행사하여야 한다.

 

이러한 3가지 요건을 충족시킨 문명권이래야 명실상부한 문명권인데, 실제로 지금까지 주장된 여러 문명권들의 실태를 살펴보면, 이러한 요건들을 무시한 채, 대체로 공통적인 문명구성요소나 문명의 역사성 및 지역성을 고려하여 문명권을 자의로 설정하였는데, 그 구분법에는 2분법, 3분법, 5분법, 7분법 등이 있다. 2분법은 크게 동양문명과 서양문명으로, 3분법은 전 세계가 거의 일체화된 약 1세기 전까지의 세계문명을 유럽문명과 중근동문명, 한자문명으로 나누는 것이다. 지중해 연안의 그리스로마문명으로부터 비롯된 유럽문명권은 그 중심이 점차 서북유럽 대륙으로 옮겨가다가 지금은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전되는 추이를 보이고 있다. 중동문명권은 고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를 비롯한 오리엔트문명으로부터 페르시아문명과 아랍-이슬람문명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자문명권에는 동아시아의 중국과 한국, 일본, 몽골, 인도차이나 등 나라들의 문명이 이에 속한다. 5분법은 서유럽과 러시아 정교, 힌두, 이슬람, 동아시아 문명권으로 나누는 분법이며, 7분법은 토인비가 제시한 분법으로서 여기에는 인도, 이슬람, 극동(한자), 비잔틴(로마 포함), 동남유럽, 그리스 정교(동유럽 포함), 서구의 문명권들이 속한다.

   이러한 문명권들은 모두가 이른바 ‘중심문명’만을 고려해 설정한 것이다. 그밖에 북방 유라시아나 동남아시아, 호주, 중남미, 아프리카 등지에서 창조된 수다한 문명들은 이러한 분법에서 제외되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유라시아 북방초원지대를 2천여 년 동안이나 활보하던 유목기마민족들이 가꾼 문명이다. 그들은 초원이란 자연환경 속에서 특유의 사회구조와 문화패턴을 가지고 다른 문명들과는 구별되는 문명을 창조하고 향유하면서 인류의 문명교류에 동참하였다. 5천 년 전에 신석기문화를 갓 벗어난 에게 해 지역의 문화를 ‘에게문명’으로 정의하면서도, 그 보다 3천년 후에 찬란한 금속문화(청동기와 철기문화)를 꽃피운 이 유목기마민족들의 문화는 문명 밖의 ‘미개’와 ‘야만’으로, 그리고 ‘중심문화’를 멀리 떠난 이른바 ‘주변문화’로 홀대 당하여 왔다. 그렇다 보니 문명교류에 대한 그들의 동참이나 기여에 대한 연구는 자연히 도외시 될 수밖에 없었다.

흔히들 키메르문화니, 스키타이문화니, 흉노문화니 하는 등 여러 유목기마민족 문화를 고립적인 문화현상으로 취급하고 개별 문화의 계승성 같은 것은 논하지만, 그 개체들로 구성된 총체, 즉 하나의 문명이나 문명권으로 묶어보지는 않는다. 문제는 그들이 창조한 개개의 문화가 동질문명으로 통합되어 하나의 문명권을 형성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문명과 문명권 인식에 관한 잣대(요건)로 유목기마민족들이 가꾼 제반 문명요소들을 가늠해 보면, 그들 역시 다른 민족들과 마찬가지로 나름의 문명을 창조하고 문명권을 이루어놓았음을 확인하게 된다. 그들은 자신들의 육체적 및 정신적 노동을 통해 그들 공유의 결과물인 문명을 창조하여 인류문명의 공영에 응분의 기여를 하였다. 특히 그들이 창조한 유목문명은 다른 민족들의 문명과 구별되는 일련의 특징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공간적으로 오래, 그리고 널리 유포되었으며, 지역사회에 지속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요컨대, 그들의 문명은 문명구성요소에서의 독특성과 문명의 시대성 및 지역성이 보장되고 생명력이 유지됨으로써 문명권 형성의 제반 요건들을 기본상 구비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문명은 성격에서 순수성이 결여된 혼성문명(混成文明)이다. 유목문명이라는 기본성격은 유지하면서도, 주변의 농경문화나 도시문화의 영향을 받아 이질적인 문명요소들을 수용한다. 이러한 수용은 생존을 위한 필수이고 ‘법칙’이기도 하다. 흉노가 한()문화를 받아들여 융화적인 ‘호환문화(胡漢文化)’를 만들어낸 것은 그 대표적 실례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혼성은 유목문명의 순수성을 희석시키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때로는 그들의 멸망과 유목문명의 멸적(滅跡)을 자초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하였다.

역대의 유목기마민족들은 강력한 군사력이나 기동력을 발동하여 일시적으로 농경지나 도시를 공략하여 경략에 의한 문화적 접촉과 교류를 진행하기는 하지만, 쉽사리 피경략지 문화에 융화되거나 동화함몰되어 버린다. 르네 그루쎄(René Grousset)는 명저 『유라시아 유목제국사』에서 중국과 페르시아에 대한 유목민들의 정복을 실례로 들면서, “중국과 페르시아의 문화는 비록 정복되었지만 도리어 저 거칠고 야만적인 승리자들을 압도하고 도취시키고 잠에 빠뜨려 소멸시켜 버렸다. 정복된 지 50년만 지나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전과 같은 생활이 계속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지적하였다. 이러한 융화성이나 동화성은 유목문화의 상대적 후진성과 불완전성에 기인한다고 판단된다.

이러한 성격상의 혼성과 더불어 유목문명은 항시 불완정성(不完整性)을 면치 못한다. 유목민들은 자연조건이나 생활환경의 변화에 민감하며 늘 유동적이기 때문에 일정한 정착이나 활동 권역을 확보하지 못하고 통일적이고 집중적인 국가권력이나 사회조직을 갖추기 어렵다. 남러시아 일원에서 수백 년 동안 위력적인 존재로 활동하던 스키타이마저도 분산 할거적인 부족연맹에나 머물렀지, 끝내 통일국가는 건설하지 못하였다. 흉노는 의례적으로 유목민족국가를 건립하기는 하였으나 오래 유지하지는 못하였다.

또한 유목민들은 생존을 위해서는 주변 논경민이나 도시민들로부터 생활필수품이나 무기를 얻어야 하는 의존성(依存性)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 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이러한 의존성은 더욱 심화되었다. 이와 더불어 부단한 유동으로 인해 유목민들은 거개가 문자를 갖지 못하는 등 문명의 후진성을 면치 못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북방 유목기마민족들은 나름대로 문명을 창조하고 일정한 문명 권역을 형성하였지만, 이러한 문화의 혼성과 불완정성 때문에 그들이 창조한 문명은 궁극적으로 확연한 유목문명으로 완결될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그들이 이루어놓은 문명의 권역은 완결된 문명권이 아니라, 준문명권(準文明圈)에 해당된다고 사료된다.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유목문명권의 미완결성을 절대시하거나 확대해석하면서 그것을 ‘주변문화’로 밀어내는 자기중심적이고 편협한 문명사관은 의당 지양해야 할 것이다. 북방 유목기미민족 문명을 비롯해 지금까지 소외된 여러 지역의 문명과 문명권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하는 것은 금후의 중요한 연구과제이다.

 

3. 문명교류의 전개과정

상술한 바와 같이 문명의 보편성과 개별성은 문명교류의 객관적 필요성과 전제이며, 전파성과 수용성은 교류를 현실화하는 요인이다. 그러므로 문명교류란 문명의 전파와 수용의 실천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은 여러 가지 형태와 내용으로 전개된다.

전파에는 한 문명요소가 다른 문명에 직접 전파되는 직접전파와 제3자를 통해 간접적으로 전파되는 간접전파가 있다. 직접전파는 문명 간의 직접적인 통로나 수단, 매체에 의해 실현되는 전파로서 보다 신속하고 원형적(原型的)인 문명요소의 전파가 가능하다. 이에 반해 간접전파는 제3자에 의한 전피이기 때문에 보다 완만하고 다분히 변형적인 문명요소가 전파될 수 있다.

다음으로 전파에는 연파(延播)와 점파(點播)의 두 가지 경우가 있다. 연파는 전파가 간단없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데 반해, 점파는 연속성 없이 군데군데 점재(點在)되는 형식으로 전파되는 것을 말한다. 연파가 문명의 자연적이고 광폭적인 확산이라면, 점파는 대체로 우연적이고 소폭적인 확산이다. 문명 전파의 직간접성과 더불어 그 파폭(播幅)을 가늠하는 이 연파와 점파는 전파문명의 수용과 그 결과로 일어나는 문명접변(文明接變, accultu-ration) 현상을 고찰하는 데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다른 문명에 대한 수용이 필요하고 가능한 것은 문명이 모방성이라는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모방(수용)은 자생적인 창조보다 쉽고 덜 소모적이며 보다 나은 것을 창조할 수 있게 한다. 전파에 의해 이동된 문명이 다른 문명 속에 합류정착되는 수용과정은 어디까지나 선택적인 과정(selective process)이다. 전파문명이라고 해서 모든 것이 다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라, 피전파문명에 적응하거나 합류할 수 있는 것만이 선택적으로 수용되어 정착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선택된 전파문명만이 살아남을 수 있으며, 따라서 그것만이 문명교류로서의 가치와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전파문명에 대한 수용은 정상적인 전파과정을 통하여 피전파문명에 자연스럽게 적응합류되는 순기능적(順機能的) 수용과 그렇지 않고 비정상적인 전파과정을 통하여 피전파문명에 강요되는 역기능적(逆機能的) 수용이 있다. 이러한 상반되는 수용의 성격은 수용에 의해 일어나는 문명접변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전파문명의 수용은 피전파문명과의 불가피한 접촉과정이다. 이 접촉과정에서 피전파문명 속에서는 이른바 문명접변이라는 문명적 변동이 일어나게 된다. 일반적으로 순기능적 수용에 의한 접변은 선진문명의 창조라든가 전통문명(피전파문명)의 풍부화 등 창조적이고 긍정적인 선과(善果)를 초래한다. 흔히 이러한 선과로 나타나는 것이 두 문명의 접변으로 인해 각이한 문명요소가 건설적으로 혼합되어 일어나는 융합(融合, fusion) 현상이다. 이에 반해 역기능적 수용에 의한 접변은 피전파문명의 해체나 퇴화 등 파괴적이고 부정적인 악과(惡果)를 낳는다. 보통 이러한 악과로 나타나는 것이 두 문명의 접변으로 인해 피차(彼此)가 아닌 제3의 문명이 형성되는 융화(融化, deliquescence)와 일방적 흡수로 나타나는 동화(同化, assimilation) 현상이다.

문명의 전파와 수용과정에서 일어나는 이상의 여러 현상들을 구체적으로 헤아릴 때만이 문명교류의 실태와 성격, 그리고 그 결과와 의미를 올바르게 판명할 수 있다.

문명교류의 종국적 지향성으로 보면, 그 과정은 문명 간의 이질성을 극복하고 보편문명( universal civilization)을 창출하는 과정이다. 보편문명이란 선이나 정의, 자유, 평등 같은 정신적 보편가치와 발달된 산업이나 기술, 교역, 복지 같은 물질적 보편가치를 아울러 통칭한다. 이러한 개념은 문명을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에 의한 결과물의 총체로서, 정신문명과 물질문명을 포괄한다는 총체론적 전망에서 추출(抽出)된 것이다. 물론 아직까지 보편문명의 개념이라든가 그 실현방도나 과정에 관한 구체적인 연구가 대단히 미흡하지만, 그간의 관련 연구동향을 살펴보면 몇 가지 문제점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그 중 가장 문제시되는 것은 보편문명을 정신적 보편가치 일변도로만 이해하며, ‘선진서구’에 의해서만이 창출 가능하다는 편단이다.

헌팅턴은 자유, 평등, 평화, 인권, 남녀평등, 민주주의 등 이른바 연성권력(軟性權力, soft power)인 정신적 가치체계만을 보편문명으로 이해할 뿐만 아니라, 그러한 보편문명을 서구의 전유물로 간주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러한 연성권력은 영토, 인구, 생산력, 군사력 같은 경성권력(硬性權力, hard power)에 뿌리를 박고 있기 때문에 후자가 쇠퇴하거나 무너질 때는 매력을 잃고 무의미하게 되며, 결코 보편문명으로 전파될 수 없다고 단정한다. 오늘날의 서구가 바로 그러한 쇠퇴상태에 빠져있는데도 굳이 서구가 보편문명 운운하면서 그것을 비서구권에 전파하려고 하는 것은 서구의 오만(arrogance)이며, 다른 문명에게는 제국주의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인류가 염원하는 보편문명은 결코 어떤 특정집단에 의해서만 성취되는 것이 아니며, 또한 그 누구의 전유물로 전략될 수도 없다. 문명 간의 부단한 교류를 통해 요원하지만 궁극에 가서는 인류 모두에게 공생공영을 담보하는 보편문명은 실현될 것이다.

 

 

맺음말

 

새로운 비전과 패러다임을 요청하는 탈냉전 시대를 맞아 문명담론은 시대의 화두로 부상하고 있다. 지난 두 세기 동안 인류의 문명사를 재량해 오던 유아적(唯我的)인 ‘서구문명중심주의’는 이제 설득력을 잃고 빛을 바래가고 있으며, ‘문명화 사명’을 자처해 오던 서구문명은 서구인들 스스로가 인정하다시피 더 이상 고압적인 우월주의에 안주할 수가 없게 되었다. 대신, 천시되고 도외시되던 ‘주변문명’, ‘저급문명’이 점차 위상을 되찾으면서 문명 간에는 타문명을 발견하고 이해하려는 문명타자론이 대두되었다. 이를 계기로 문명 간의 관계 속에서 문명을 이해하고 정의하려는 현대적 문명담론이 활성화되고 있으며 문명 인식이 점차 균형을 잡아가고 있다.

이 과정에서 미래의 비전을 지향하는 문명대안론(文明代案論)이 거론되기 시작하였다. 인류역사는 인간사회가 제기하는 갖가지 문제에 대한 해답(상징적이건 구체적이건)을 모색하고 그 것을 실천해 나가는 과정이다. 종교로 선악을 가려내고, 철학으로 사유를 진작시키며, 윤리로 도덕을 바로잡으며, 생산으로 부를 축적하며, 교류로 유무상통하는 등 모든 것이 바로 그러한 과정이다. 이러한 과정을 추구하는 논리적 틀로서 허다한 학설과 주의 주장이 안출되었고, 그 실천방도와 보장책으로서 각종 제도와 규범이 마련되었다. 그러나 역사적 경험이 보여주다시피, 그 어느 것 하나도 서로가 격폐된 세계 속에서 시공을 초월한, 그리고 보편타당한 해법으로 기능하지는 못하였다.

특히 20세기에 들어와서 미증유의 세계대전을 두 차례나 겪은데다가 냉전까지 겹치다보니 종래의 해법에 대한 회의론이 일면서 새로운 대안 모색이 시도되었다. 그 대안의 하나가 바로 문명이다. 그 근거는 한마디로 공유를 생명으로 하는 문명만이 모든 문제 해결의 공통분모로 작용하여 보편문명을 창출함으로써 인류의 공생공영을 보장할 수 있다는 데 있다. 그런데 이러한 보편문명의 실현은 오로지 서로의 부정 아닌 긍정, 상극 아닌 상생 속에서 상부상조적 교류를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끝으로, 문명은 복합적인 실체이다. 경험이 보여주다시피, 어느 부분학문으로 문명을 재단하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문명은 문명으로 접근해야 한다. 부분학문의 경우, 그 고유의 영역에서, 그 고유의 방법론으로 문명에 접근해야 할 것이다.

 

 

 

 

 

 
혜초와 [왕오천축국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