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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09.05.07] 답사강좌 3강 강의록 작성자 관리자
파일 [20090507]_답사강좌_3강_강의록.hwp 조회수 891
[09.05.07] 답사강좌 3강 강의록
 

 

제3강 문명의 용광로 투르판

 

 

◆ 투르판의 인문지리

▶ 지 리 --- ‘풍요로운 곳’이란 뜻; 사막 속의 분지 오아시스; 시 중심은 해면보다 60m 낮음, 아이딩호(艾丁湖)는 해면보다 154m; 한여름 기온 50도(최고 83,3도), 강우량 16,6mm, 건조. 강풍. 건조의 3가지 특징, 화주(火州), 사주 (沙州), 풍주(風州)라 불리움; 불과 모래, 바람은 이곳을 문명의 용광로로 만; 178개 유적지로 평균 280㎢에 하나씩

 

▶ 역 사 --- 7천년 신석기 시대부터 인간 거주, 3천년 전부터 정착농경; 토착민은 이란계 차사인(車師人), 교하고성(交河故城, 야르흐) 수도로 한 차사전국(車師前國) 건국, 후한과 흉노가 번갈아 통치, 5c 중엽 북량(北涼)이 지방정권 세움, 한족 출신의 국씨 고창국(麴氏 高昌國) 건국, 640년 당나라에 멸망, 9c 중엽부터 위구르족 통치, 13c 몽골군 점령해 4대 칸국의 하나인 차가타이 칸국이 지배, 17c 중엽 청이 설치한 중가르부(部)에 예속, 1884년 신간성 설립

▶ 자치구 소재지 우루무치 --- '아름다운 목장'이란 뜻, 신실크로드의  요충지

# 역사 : 천산산맥 북쪽 기슭, 우루무치강 가, 해발 915m 고지, BC 1c부터약 1천년간 '무풍지대', 만청이 18세기 중엽 안서제독을 주둔시키고 '적화(迪化)'로 개명, 19세기 중엽 무슬림 대규모 반청독립운동, 만청이 무력 진압 하고 신장성 성도로 선포, 위구르족과 카자흐족이 1944년 동투르키스탄공화 국 건립, 중국군 진주, 1955년 자치구 설립

# '민족의 십자로' : 위구르, 카자흐, 타지크, 회족, 한족, 몽골족 등 13개 민족, 인구는 1906년의 39,000에서 2006년의 208만(53배)으로 급증

# 홍산공원 : 붉은 색 암괴 산, 해발 1,391m, 우루무치 상징인 진룡탑(鎭龍塔, 1788년 건립), 서왕모(西王母)의 용 진압 전설

# 천지(天池) : 동 110km의 보고타봉(博格達峰) 중턱 해발 1980m 지점, 둘레 11km, 서왕모와 주나라 목왕(穆王)이 요지(瑤池)에서 만난 전설

# 신실크로드의 요충지로 부상 : 8개 국제항공로, 매해 12% 고도성장, 40여개 나 라 1,300여개 회사 신출

진룡탑(鎭龍塔) 

◆ 문명의 다양성

▶ 민족적 다양성 --- 50만 인구 중 위구르족, 회족, 한족이 주류, 1949년부터 2004 년까지 55년 사이 위구르족 90%에서 70%로, 회족(回族) 9.6%에서 7.6%로 감소, 그러나 한족은 1%에서 22%로 급증

▶ 문화적 다양성 --- 다양한 종교와 유물에서 표현

# 불교 : 차사전국 수도 교하고성(交河古城, 남북 1,700, 동서 300m)의 불교 사 원 유적

버들잎 모양의 2천년 전 교하고성(交河故城)

# 마니교 : 동 60k의 토욕구(吐峪溝) 동굴사원은 불교와 마니교 공존, 42호 동굴 의 마니교 그림(‘생명의 나무’ 49개)

# 유교 : 아스타나 고분군 216호 묘실 6첩 병풍그림 중의 ‘옥인(玉人, 청렴결백)’, ‘금인(金人, 언행신중)’, ‘석인(石人, 결심부동)’, ‘목인(木人, 무위정직’); 40호 분의 '복희여와도(伏羲女와圖)'

아스타나 고분군 216호실 정면의 4첩 성인도 : 좌로부터  옥인, 금인, 석인, 목인 순  

# 이슬람교 : 8세기 전반부터 전파 시작, 10세기 카라한 왕조 이슬람교 수용, 16c말 전 신강에 전파, 청나라 때의 소공탑(蘇公塔, 37m)

# 다양한 유물 : 신장역사박물관 소장 3만여 점 유물 중 하미의 채도 항아리, 페 르시아 유리그릇, 알타이계 구리솥, 시베리아 토기, 북방계 석관묘 등

▶ 베제클리크 석굴의 수난 : '아름답게 장식한 집'이란 뜻, 83개 석굴 중 벽화 남은 곳 40개뿐, 6~13c 시기 조성; 독일이 1902~1914년 4차에 걸쳐 폰 르콕(A. von Le Coq) 등이 277상자(1~3차) 회화 도굴

 베제클릭 석굴 외경

 

베제클릭 석굴 15호굴의 서원도

 

투르판 명물 카레즈와 포도

토인비의 ‘도전과 응전’의 원리와 문명의 탄생 --- 투르판이 대표적 경우, ‘응전의 전리품’이 카레즈와 포도

카레즈 --- 여러 나라에 존재, 아프가니스탄은 ‘카레즈’, 이란은 ‘까나트’, 시리 아와 북아프리카는 ‘호가라’라고 부름; 기원의 통설은 5c경 조로아스트교가 들어면서 함께 전입, 중국은 자생설 주장, 근거는 흙 나르는 광주리인 운토 광(運土筐)이 중국어 이름이고 <사기>나 <한서>에 수로 관련 기록 존재 등, 중원에서 왔다고 주장; 4대 구조 : ① 수정(垂井), ② 암거(暗渠), ③ 명거(明 渠), ④ 노패(澇 ); 근 1000개, 연장 5천km, 중국 3대 역사(役事)의 하나

투르판의 명물 카레즈, 천여 갈래로 총 연장 길이 5천Km 

 

▶ 포도 --- 원사지는 중앙앙시아의 페르가나(大宛國)와 카스피해 2설, BC 3천년 전에 재배, 투르판은 2천년 전 들여와 환경에 순화(馴化)시키는 슬기 발휘해 최상의 포도 생산; 동북쪽 10km 화염산(火焰山) 서쪽 기슭의 포도구 (葡萄溝); 평균수명 150년, 종류 200여종; 4대 종류 : ① 왕중왕(40년 나무), ② 여인왕, ③ 수상건, ④ 흑진주

 

◆ 쿠처와 한반도

▶ 쿠처의 역사 ---구자(龜玆), 현 쿠처(庫車); BC 2c부터 중국사서에 등장, 서역 36 개국 중 9대국의 하나, 흉노와 한이 번갈아 통치, 당대 서역도호부(西域都護 府) 설치해 서역경영의 핵심부, 문명교류 특히 불교 전파에 기여, BC 1c에 불교 유입, 2~5세기는 소승불교, 7c부터 대승불교, 그것이 중국에 전파

▶ 쿠처와 한반도 --- 혜초(慧超)가 개원(開元)15년(727) 11월 상순 도착, 기록 남김; 고선지(高仙芝) 5차 서정(740~751) 출발지; ‘구자고성유지(龜玆故城遺址)’; 악기와 산예(狻猊, 崔致遠의 <鄕樂雜詠5首>중) 등이 전래

 

◆ 키질 석굴과 한낙연(韓樂然)

키질 석굴 --- 중국 4대 석굴의 하나, 석굴 236개(300여개로 추산), 그 중 75개굴 벽화 1만㎢, 3~9c까지 약 600년간 조성, 부처의 본생(本生)과 본행 (本行), 교화와 공양을 주제로 한 벽화가 핵심, 기법은 서역과 중원기법 융합 해 쿠처풍 벽화 창조, 그 특징으로 ① 마름꼴 격자 속에 그림 그리기, ② 6c 북제(北齊) 미술에 나타난 조중달(趙仲達)의 ‘조의출수(曹衣出水)’ 기법 도입

키질 석굴 전경과 고승 구마라습(344~413),  청동좌상(1994 건립)

▶ 한낙연(1898~1947)

# 10호굴 제자(題字), 내용 : 1946년 6월 5일과 47년 4월 19일 두 차례에 제자 4명(두 번째)을 데리고 와 벽화 모사하고 편호(編, 韓氏編號)를 매긴 사실, 아름다운 보고라는 것, 외국 고고대들에 의한 파괴상, 유적 애호와 보관 당부 등

# 이력 : 본명 한광우(韓光于), 연변 용정(延邊 龍井) 출생, 3.1운동시 세부서 에서 태극기 만들어 시위자들에 공급,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쳐 상해로 가서 1920년 상해 미술전문학교에 입학, 1924년 1월 졸업, 당시 ‘동아일보'(1924.1.15.)는 ‘미술계의 2수재’로 평가 ; 졸업 후 봉천(奉天, 瀋陽)에 가 사 립미술학교를 세우고 교장, 소련과 동북 등지에서 항일운동(치치하르에서 ‘낙천사진관(樂天寫眞館)’ 사진사로 변신), 1929년 프랑스 유학, 파리의 국립루 브르예술학원에 입학, 독학, 피카소처럼 거리화가란 이름 얻음, 국제적 반파 시즘운동에도 동참, 1937년 8년간 유학 마치고 귀국

# 작품활동 : 귀국 후 작품활동과 항일투쟁하다가 국민당에 체포 3년간 옥고, 옥 중에서 ‘다리 위에서’ 등 수채화 40여점 그림, 출옥 후 난주(蘭州)에 정주해 벽화의 복원작업 구상, 돈황에 두 번 가 ‘뇌신(雷神)’ 같은 모사(模寫) 수작 (秀作) 그리고 <키질 벽화와 돈황 벽화와의 관계>란 학술논문 발표; 46년과 47년 키질 방문, 아스타나에서 미라 등 여러 점 유물 발굴, 47년 7월 30일 국민당 군용기 타고 우루무치에서 난주를 향하다가 가요관(嘉峪關) 상공에서 ‘기후 악화’로 추락 사망

# 평가 : 20여 차례 개인전, 165점 유작(키질 석굴 작품 29점) 남김, 서구의 사실주의적이며 인상주의적 화풍과 동양 전통의 필묵(筆墨) 화풍을 조화시켜 화면의 층차(層次)가 분명하고 입체감이 넘치며 색조가 묵직하면서도 명쾌 하고 지역 특색이 선명한 풍속화. 풍경화. 초상화. 벽화 모사화(模寫畵)등 다 양한 소재의 그림을 그려 ‘유작마다 국보’(件件遺作是國寶)란 절찬 받음, ‘중 국의 피카소’, 열렬한 사회할동가, 굳건한 ‘역사문물의 지킴이'’로서 시대적 사명에 충실한 지성인의 귀감; 한국에서도 중국 한인 출신의 민족주의자로 평가되어 1993년과 2005년 두 차례 유작전시회 개최, 2005년 8월 독립운 동가로 포상  

쿠처풍 벽화의 특징인 마름꼴 격자무늬(17굴 주실, 본생도)

 

[09.04.16] 문명강좌 2강 강의록
[09.05.21] 문명강좌 3강 강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