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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32) ‘호한(胡漢)문화’의 흔적, 노인울라 고분군 작성자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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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호한(胡漢)문화’의 흔적, 노인울라 고분군
 
 

 

ㆍ흉노의 보물창고… 동서문명 교류상 고스란히

 

울란바토르에 돌아와서는 시외에 있는 도간 캠프에 여장을 풀었다. 초원과 수림의 경계에 자리한 캠프는 20여 채의 게르를 품고 있는 천혜의 휴양지다. 식당과 화장실, 샤워장 등 후생시설이 깔끔히 갖춰져 있다. 초원과 수림에서 배어 나오는 향긋한 내음이 코를 찌른다. 총총한 뭇별을 머리에 이고 밤 늦도록 캠프파이어를 열어 몽골의 대자연에 흠뻑 젖어본다. 다음날 아침 지저귀는 새소리에 새벽잠을 떨쳐버렸다. 어둠이 채 가시기 전에 일어나 캠프 주위를 서너 바퀴 돌았다. 도는 내내 오늘에 있을 노인울라 고분군 답사가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다. 얼마나 기다려 왔던 답사인가. 빠듯한 일정을 감안해 일행은 두 편대로 나눠 행동하기로 했다. 필자를 비롯한 11명은 차 세 대에 나눠 타고 아침 8시30분에 울란바토르 북방 100여㎞ 지점에 있는 고분군을 향해 떠났다.

노인울라 고분군 지구의 입구 표식.

필자에게 노인울라로 가는 길은 초행길이다. 워낙 교통이 불편한 곳이라서 현장 답사에 관한 기록은 별로 남아있지 않다. 우리나라엔 거의 없다. 문제는 찾아 가는 길인데, 현지 기사들도 모르고 있다. 지도를 짚으며 어림잡아 찾아 가는 길이라서 처음부터 가다 서다와 에돌기를 반복한다. 두 시간쯤 달려서부터는 잡초가 무성한 초원길이다. 이틀 전에 내린 비로 길은 질퍽거린다. 가끔 움푹 팬 물웅덩이에 차바퀴가 빠져 부르릉댄다. 가까스로 물어물어 노인울라 산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노인울라 고분군을 찾아가다 차가 진탕길에 빠졌다. 일행은 고분군을 지척에 두고 돌아와야 했다.

네 시간쯤 달렸을 무렵 갑자기 돌풍이 일고 먹구름이 밀려오며 천지를 통째로 뒤흔드는 천둥·번개가 하늘을 몇 조각내더니 급기야 장대 같은 빗줄기가 퍼붓는다. 흙탕물이 도랑 져 흐른다. 몇 번이고 훑고 지나가는 빗살을 피해 잠깐 멎었다간 다시 움직이곤 한다. 멎어선 차를 밀고 끌고 한 지 벌써 여러 차례, 차도 사람도 지쳤다. 그러나 전진한다. 오로지 목표를 향해. 이렇게 한 시간 반 동안이나 폭우와 사투했지만 차는 더 이상 언덕길을 톱아 오를 수가 없다. 일행은 구수(鳩首)회의를 거듭한 끝에 결연히 멈추고 돌아가기로 했다.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이기 때문이다. 자욱한 안개 속에 희미한 모습을 드러낸 노인울라, 10㎞도 채 안 되는 지척에서 우리 보고 손짓한다. 그러나 가닿을 수 없는 곳, “노인울라여, 다시 찾아오마.” 속으로 한 마디 남기고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되돌렸다. 돌아오는 길은 억수로 내린 비 뒤라서 갈 때보다 몇 곱절 힘들었다. 밤 8시가 되어서야 울란바토르에 도착했다.

일행이 고생을 무릅쓰고 노인울라 유지를 찾아 떠난 것은 흉노를 참하게 알기 위해, 그 가운데서도 흉노가 동서교류에 미친 영향, 좁혀서 우리와의 관계를 현장에서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흉노에 의한 동서교류는 스키타이 유목 문화를 동전시킨 데서도 찾아볼 수 있지만, 유목문화와 한문화를 융합시킨 이른바 ‘호한문화(胡漢文化)’에서 더욱 극명하게 나타난다. 기원 전후로 추정되는 이 유지는 몽골어로 ‘왕후의 산’이란 뜻의 노인울라 산중에 위치하고 있다. 1910년 산중에 있는 금광맥을 채굴하다가 우연히 무덤을 발견한 이래 1924년부터 코즐로브 등 소련 고고학자들에 의해 고분들이 속속 발굴되었다. 1962년 역시 소련 고고학자 르덴코가 종합발굴보고를 제출함으로써 고분군의 모든 면모가 드러나게 되었다.

   노인울라 고분군 제12호분 발굴 현장.

총 212기의 고분은 모두 세 개 골짜기의 경사면에 자리하고 있다. 대체로 묘 형태는 남시베리아나 알타이 지방 특유의 스키타이계 고총분(高塚墳, 쿠르간)과 중국 한나라의 목실분(木室墳)을 융합시킨 혼합형이다. 묘의 구조는 중국(전국과 진한 시대)과 한국(낙랑 고분)의 분묘와 유사한 절두방추형(截頭方錐形), 즉 구조의 주체인 기실(基室)은 지하 광내(壙內)를 목재로 만들고 그 위에 봉토를 씌우며 지하의 곽실로 이어지는 갱도를 앞에서 파 들어가는 구조이다. 고분에서는 각종 마구류, 구리솥, 3날개 철촉, 동물투쟁도 등 북방 유목기마민족문화에 속하는 유물들과 함께 ‘선경(仙境)’이나 ‘만세(萬歲)’ 같은 한자가 새긴 비단 천과 한나라 거울 조각 등 중국 유물도 상당수 출토되었다. 그런가 하면 페르시아를 비롯한 서역의 대표적 문양인 대칭문양이나 기하학문양 같은 것도 발견되었다. 한마디로 노인울라 고분군은 흉노를 축으로 한 동서문명의 교류상을 깊숙이 간직한 보물창고이다.

노인울라 고분군 제6호분에서 출토된 모직 바지.

이러한 보물창고의 흔적은 흉노가 서쪽으로 이동한 길가와 그 후예인 훈이 활동한 유럽 전역에서 고스란히 찾아볼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유물로는 옥으로 장식한 검과 뼈 활고자를 부착한 활, 각종 청동 거울과 비단 등 진한대의 유물과 더불어 흉노 특유의 구리솥을 꼽을 수 있다. 이러한 유물들의 서전은 대부분이 3~5세기에 이루어졌으나 일찍이 1~2세기의 것도 있다. 이것은 흉노가 동방문물의 서방 전파에서 선구자적 역할을 했음을 말해준다.

노인울라 고분군을 비롯한 여러 흉노 유적과 이렇게 서전한 호한문화의 유물이 발견됨에 따라 베일에 가렸던 흉노의 모습이 차츰 드러나고 있다. 목축 경제를 근간으로 하는 유목사회는 농경사회와는 달리 계급(신분) 분화가 명확지 않은 반면에 구성원들의 혈연이나 지연 의식은 강하다. ‘보드’라 불리는 혈연공동체가 ‘보둔’이라고 하는 부족공동체로 확대되고, 나아가 그것이 정치적 연합체인 흉노 사회를 구성함으로써 흉노 사회는 부족연합체적인 유목국가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정치나 사회 조직은 좌우, 동서, 흑백으로 나눠 상호 견제적인 균형을 기하려는 이원화(二元化) 제도를 채택하고, 군사 조직은 십진법에 따라 십, 백, 천, 만 단위로 편성한다. 이러한 이원화 제도나 십진법은 후일 돌궐이나 위구르를 비롯한 투르크계 국가들로 전승되어 투르크 사회의 한 특징으로 정착되었으며 몽골이나 동아시아 국가의 정치, 군사 체제에도 일정한 영향을 미쳤다.

  노인울라 고분군 제25호분에서 출토된 청동제 한나라 거울 조각.

흉노 사회의 경제구조에서 특기할 것은 목축이나 수렵을 근간으로 하면서도 농경도 더불어 경영했다는 사실이다. 고분에서 돌절구와 농작물 종자 및 농경과 관련된 도기(낟알 저장용)가 발견된다. <한서> ‘흉노전’에는 기원전 88년 가을 흉노 지역에 몇 달 동안 비와 눈이 내려서 ‘곡식이 영글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어 농사를 짓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기원전 2세기 이후에는 흉노의 창고에 식량의 여분이 비축될 정도로 농경이 발달했다고 한다. 흉노가 철제 농기구를 제작·사용하고 한으로부터 농경 기술과 농기구를 수입함으로써 그것이 가능했던 것이다. 이처럼 유목민이라고 해서 무턱대고 농경을 무시한다든가, 농산품 결핍 때문에 농경민과의 약탈전이 불가피하다는 식의 교조적 통념은 재고되어야 할 것이다. 농경에 따라 도시가 건설되어 정주생활을 한 흔적도 발견된다.

  노인울라 고분군 제6호분에서 출토된 비단 방한모.

흉노인들이 창조하고 향유한 문화에 관해서도 전승된 예술이나 남겨놓은 유품을 통해 그 모습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다들 흉노에게는 문자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있었을 개연성을 시사하는 사실 몇 가지가 있어 주목된다. 사적에는 흉노 사신들이 선우의 서신을 휴대하고 다녔다는 기록이 나온다. 그렇다면 그 서신은 필경 무슨 문자로 씌어졌을 터이므로 문자가 있었을 법하다. 노인울라 고분군 16호분을 비롯한 여러 유적에서 칠기나 도기 밑바닥에 영어 자모 ‘M’이나 ‘Y’ ‘P’ ‘S’, 한자 ‘人’자와 비슷한 부호가 새겨져 있다. 이것들이 어떤 문자 부호가 아닌지 의문시된다. 비록 문자는 없었지만, 무용담이나 전패의 아픔, 권력의 흥망 등을 주제로 한 민요는 전승되어 왔다. <사기> ‘흉노전 색은(索隱)’조에는 ‘서하구사(西河舊事)’란 흉노 민요 한 수가 실려 있다. 내용은 기원전 121년 한에 격파되어 기련산(祁連山)과 연지산(燕支山, 지금의 감숙성 하서주랑)을 잃은 슬픔을 노래한 것이다.

   기련산 잃으니 육축이 번식할 수 없게 되고(失我祁連山 使我六畜不蕃息)

   연지산 잃으니 부녀들 얼굴 기색 없게 되었네(失我燕支山 使我嫁婦無顔色)

여기서 육축(六畜)은 유목기마민족인 흉노인들에게 중요한 여섯 가지 가축, 즉 말·소·양·닭·개·돼지를 말한다. 그리고 ‘연지(燕支)’는 여인들의 얼굴 치장용 ‘연지(연脂)’나 흉노어에서 아내를 이르는 ‘연지(閼氏)’와는 동음이의어이다. 흉노는 이러한 차음우의(借音寓意)를 교묘하게 이용해 땅 잃은 아픔과 슬픔을 민요화하는 지혜를 발휘했다.

 노인울라 고분군 제6호분에서 출토된 모직 카펫의 동식물 자수 문양.

흉노인들의 예술은 주제나 기법에서 그들의 생활모습을 사실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도안이 정교하고 색채가 화려하며 색색의 실로 수놓은 카펫 유품은 보기에도 진귀하다. 특히 펠트 위에 다양한 색깔의 털실을 사용해 아플리케 기법으로 장식한 수예품은 흉노의 특징적인 예술품으로 평가 받고 있다. 흉노의 신앙체계는 농경 사회의 지신(地神)이나 유목민들의 토템 신앙보다는 천신(天神) 사상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 선우는 최고통치자일 뿐만 아니라 천신의 아들로서 그 뜻을 지상에 펴는 사제장이며 대리자이기도 하다. 선우들이 한나라 황제에 보내는 문서에는 늘 자신을 ‘하늘이 세운 흉노 대선우(天所立匈奴大單于)’이니, ‘천지가 낳고 일월이 설한 흉노 대선우(天地所生日月所置匈奴大單于)’라고 자칭한다. 그들은 천지 신령의 화신으로서의 우상이나 무당(胡巫)도 믿는다. 고분에서 출토된 금인상(金人像)이나 목용(木俑)이 바로 그러한 우상이다. <한서> ‘소무전(蘇武傳)’에 보면 흉노에서 칼로 자살한 소무가 한 무의(巫醫)의 구급 치료로 반 나절 만에 회생되었다는 기사가 있는데, 이것은 신과 인간 간의 영적 매체로서의 무당은 주술과 의술을 겸행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흉노가 역사 무대에 등장한 시기는 원시 씨족 사회의 유습이 적잖게 남아 있던 시기다. 그런 전형적 유습을 혼인풍습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씨족 관계의 틀을 유지하기 위해 계모를 아내로 삼는 수계혼(收繼婚)과 형수나 제수를 아내로 삼는 수혼(嫂婚)이 바로 그 일례이다.

이러한 이질문화를 지니고 있는 흉노가 신라의 김씨 ‘조상’이라니, 신라인에게 흉노의 ‘피가 흐른다’느니 하는 의아스러운 화제가 요즘 장안에 자자하다. 몇 마디로 해명이 가능한 주제가 아니라서 상론은 따로 미루고, 근간의 설왕설래에서 불급된 부분 하나만을 지적코자 한다. 기왕 신라 김씨의 조상을 중국에서 찾으려 한다면 제대로 찾아봐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 김씨에는 황제의 아들 소호(少昊, 金天氏)를 시조로 하고 팽성(彭城, 현 徐州)을 본향으로 하는 김씨와 흉노의 휴도(休屠) 왕자 김일제(金日 )를 시조로 하고 경조(京兆, 현 西安)를 본향으로 하는 김씨의 2대 계보가 있어 엄연히 구별된다. 그럼에도 소호와 김일제를 하나의 혈통으로 혼동한 ‘대당고김씨부인묘명(大唐故金氏夫人墓銘)’과 소호 언급(?) 없는 ‘문무대왕릉비’를 근거로 서로가 별족인 화하족(華夏族)의 소호를 시조로, 흉노족의 김일제를 중시조로 엮는 이른바 신라 김씨의 ‘뿌리 인식’ 운운은 그것이 관념상이건 실제상이건간에 일견해 자가당착적임을 갈파하게 된다. 이 한 점만 파고들어도 무슨 실마리가 잡힐 듯하다. 아울러 아리송한 비문 몇 글자에만 매달리지 말고 시야를 세계로 넓혀야 할 것이다.

일행이 머물었던 도간 캠프 전경.

노인울라 행에 뜻밖의 시간을 소비하니 마지막 날(7월9일) 울란바토르에서의 일정엔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자이산 대일전승기념탑 답사는 취소되고 간단 사원과 민족사박물관 참관은 간소화되었다. 다음 기회를 약속하고 오후 1시30분 몽골 항공편(OM 301)으로 칭기즈칸 국제공항을 이륙해 귀국길에 올랐다. 초원 실크로드의 동맥, 몽골 대초원의 어제와 오늘을 함께한 답사의 대단원은 여기서 막을 내렸다.

 

<정수일|문명사학자·한국문명교류연구소장 www.kice.ac>

 

[경향신문. 09, 09,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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