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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과학의 제국 작성자 문장렬
파일 조회수 834
과학의 제국
 

 

과학의 제국

문장렬(국방대학교 군사전략학부교수 (jnmoon@hotmail.com)

많은 사람들에게 어린 시절의 과학은 신기함으로 다가온다. 호기심이 생기고 흥미를 느끼고 상상력을 펼쳐보고 과학자가 되려는 꿈을 가지기도 한다. 대부분 여기까지다. 크면서 알고 보니 과학은 사뭇 다른 얼굴이었던 것이다. 과학은 생명이 없는 물체에 대하여, 또는 생물이라 할지라도 철저히 객관화된 대상으로서, 세심한 관찰과 측정을 요구한다. 그것은 아무렇게나 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절차와 방법으로 해야 한다. 쉽지 않을 뿐더러 한참 하다 보면 자신이 무엇을 왜 하는지 모르게 될 수도 있다. 낙심한다. 게다가 기초과학은 수학이라는 혐오스런(?) ‘언어’로 소통해야 한다. 복잡한 공식과 개념을 연결시키는 일은 대개 훨씬 후에 이해할 수 있는 것이지만 당장은 기계적으로 기호와 숫자를 대응시킬 것을 종용한다. 금방 따분해지고, 애꿎은 자신의 지능을 의심하고, 쓸데없이 자존심 상하고, 결국 이별이다. 다행히 크면서 다른 재미있는 것들과 하고픈 일들이 더 많아진다.

어떤 사람들은 관심이나 재능이 있어 과학에 종사한다. 과학자들 사이에도 관심과 재능은 천차만별이다. 관심이 다른 것은 때때로 보호막이 된다. 적절히 소통을 제한함으로써 재능의 부족을 숨기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고수들에게는 그런 게 통하지 않을 뿐 아니라 ‘동네’의 규율이 좀 엄격하고 서로 감시하는 분위기가 비교적 강하기 때문에 자신의 재능을 과대포장하려면 특별한 강심장을 가져야 한다. 무엇이든 일상이 되면 잔인해진다. 과학자들에게 과학도 마찬가지다. 수십억 달러를 들여 만드는 실험장치에 수천 명의 박사들이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고 다수가 ‘더럽고 위험한’ 작업을 매일같이 해야 한다. 그래봐야 나오는 것은 137억 년 전의 우주의 상태에 관한 약간의 힌트 정도일 거라 하니 돈이 아깝다는 생각도 든다. 책상머리에서, 컴퓨터 앞에서, 화학약품 가득한 실험실에서, 세포 배양 용기와 실험용 동물들 사이에서, 연구비와 승진과 과학적 명예의 압박 속에서 과학자들의 일상이 저물고 있다. 어떤 과학자들에게는 일찍 과학과 이별했던 많은 사람들이 느꼈던 낙심, 따분함, 자신의 재능에 대한 회의, 그런 것들이 일상이 되기도 한다. 더 잔인하게. 불행히도 이젠 다른 재미있어 보였던 것들과 하고픈 일들이 많이 줄어들고 있다.

어느 날, 둘러보니 온통 과학이다. 뭐든 과학이라는 이름을 붙이면 더 그럴싸해 보인다. 과학이라는 족보에 등재하여 가문의 일원이 된다. 일찍 서둘러 한 가계를 이룬 게 사회과학이라는 것이다. 공부하는 내용은 달라도 방법이 같으면 과학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옳은 말이다. 게다가 자꾸 불러주면 부르는 대로 되는 경향도 있다. 당연히 정치학은 정치과학(political science), 경제학은 경제과학(economic science), 경영학은 경영과학(management science), 정책학은 정책과학(policy science)이 되고, 군사학도 좀 헛갈리긴 하지만 군사과학(military science)이다. 원래부터 과학의 족보에 있었던 다른 가계들도 좀 더 확실하게 개명한다. 화학은 화학과학(chemical science)으로, 생물학은 생물과학(biological science)으로, 지질학은 지질과학(geological science)으로, 의학은 의과학(medical science)으로. 하나의 독립된 가문으로서 오랫동안 고고함을 유지하던 수학도 수리과학(mathematical science)이라는 명함을 추가로 만들었다.

과학의 번식과 분화는 양성생식(兩性生殖) 만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무성생식도 가능하고 심지어 여러 개가 결합하기도 하며 점진적인 변이와 돌연변이가 일어나기도 한다. 이렇게 태어난 신생아들은 모두 과학의 가문에 입적한다. 컴퓨터과학(computer science)과 정보과학(information science)은 본질적으로 수학이지만 과학이라는 성씨를 택했다. 심리학은 일단은 심리과학(psychological science)이라는 간판을 내걸더니 그 옆에 괄호를 쳐서 행동과학(behavioral science)라는 말을 새겨 넣었다. 그 밑에 써넣은 영업분야에는 과거에 인지심리학이었던 것이 인지과학(cognitive science)로 바뀌어 있고 신경과학(neuroscience) 및 뇌과학(brain science)과 동업하고 있다는 광고 문구도 보인다. 비교적 최근에 ‘다성생식(多性生殖)’으로 태어난 생명과학(bioscience, life science), 우주과학(space science), 환경과학(environmental science), 나노과학(nanoscience) 따위는 여기저기서 나오는 크고작은 돈뭉치들을 마구 삼키면서 하마처럼 몸집이 커졌다. 그리하여 거대과학(big sciences)라는 족벌들이 생겨났다.

이런 마당에 인문학도 계속 배고픈 채 남아있기 어려웠을 것이다. 전에 인문학의 원조 격인 역사학을 ‘역사과학(historical science)’으로 승화시키려는 야심을 가진 자들이 있었다. 지금도 일부는 그런 야심을 계속 품고 있는 듯하다. 그 위대한 역사학의 시도를 문외한들이 감히 평가하기 두렵다. 요즘은 과학의 발달 속도가 워낙 빨라 몇 년 전은 먼 과거처럼 느껴진다. 그런 면에서 인문학의 위기도 꽤 오래된 문제이다. 답이 잘 안 나온다. 우선 좀 어색하긴 하지만 ‘인문과학’이라 하기로 하자. 자꾸 그렇게 부르다 보면 어색함도 없어질 터. 문화? 그것도 ‘문화과학’이다. ‘정신과학’이라는 말도 한 번 사용해 보니 그런대로 들을 만하다. 그러자 무당들이 신이 났다. 그 새로운 신이 원래 내려 있던 신과 동침하더니 ‘심령과학’을 낳았다. 역사과학이나 정신과학 너무 열심히 하다 보면 종교를 과학화하려는 유혹에 빠지는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창조과학’이 창조되었다. 과학 가문이 커지다 보니 이제 웬만하면 다 과학이다. 하여, 침대도 과학이다. 분명코 ‘침대과학’은 두꺼운 과학 족보책의 맨 마지막 장에 나올 것이다. 출생지 대한민국. (영어 명칭을 넣을 괄호는 맨 처음 떠오른 답이 정답이 아닐 수 있다는 과학적 사실 때문에 아직 공란.)

이 정도면 과학이 하나의 가문이 아니라 지식 세계의 제국이라 불러 마땅할 것이다. 제국의 확장사(擴張史)는 현실의 제국의 그것과 비슷하다. 처음에 철학이라는 고대 제국의 작은 지방에 불과했던 과학은 오랜 세월 형이하학이라는 땅을 파면서 부국강병에 힘쓰더니 모국의 가장 중요한 지역 중 하나를 공격하기 시작하면서 독립했다. 모름지기 적을 공격하려면 그 중심(重心, center of gravity)을 목표로 하는 것이 전략의 기본이다. 그게 형이상학에 속했던 우주론이었고 대략 500년 전쯤 일어난 일이다. 초기 전투에서 최고의 명장은 단연코 코페르니쿠스였다. 이후 전쟁의 양상은 철학과 동맹관계에 있던 종교라는 또 하나의 제국이 개입하면서 더 치열해졌지만 티코 브라헤, 요하네스 케플러, 갈릴레오 갈릴레이와 같은 장수들이 혁혁한 전공을 세웠고 마침내 뉴턴이라는 걸출한 장수가 나타나 150년 만에 우주론의 점령을 완성하면서 제국의 기틀이 잡혔다. 그 후의 역사는 한층 더 복잡하지만 크게 줄여 말하자면 약 100년 전부터 과학 제국은 명실상부한 유일 초강국으로 등극하였으며, 그 팽창의 강력한 모멘텀으로 변방의 소국들은 혹은 강제로, 혹은 반강제로, 혹은 자발적으로 제국에 복속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제국의 시민들은 동등하지 않다. 이 역시 현실의 제국과 비슷하다. 대략이나마 골품의 서계가 형성되어 있고 권력과 부의 분배에도 상당한 편차가 있다. 물론 물리학이 성골(聖骨)의 계층을 점하고 그 꼭대기에 이론입자물리학(theoretical particle physics)이 있다. 거기 속한 이들은 가장 작은 세계부터 가장 큰 세계인 우주까지 걸쳐 가장 근본적인 문제들을 다루는 제국 수호의 최후 보루이다. 그들의 대화는 거의 수학으로 시작하여 수학으로 끝난다. 그러나 제국의 경제에 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 그리 부유하지 못한 삶을 산다. 그들은 비록 축소되었지만 아직 남은 영토가 조금 있는 과거 제국들, 그러니까 철학이나 종교에 가장 위협적인 존재이다. 또 시간이 나면 아래 골품의 누군가가 엉터리같은 소리로 떠든다 싶거나 새로 속방으로 편입된 지역에서 누군가가 중앙의 움직임을 허투루 파악하고 함부로 귀족 행위를 흉내낸다 싶으면 혼내 주기도 한다. 예컨대, 얼마전(1996년) 앨런 소칼(Alan Sokal)이라는 뉴욕대학 물리학교수가 포스트모더니즘을 패러디한 논문을 미국의 어느 문화 전문연구지에 게재하고 (즉, 그 학술지는 그것을 진지하게 검토하여 수락했다는 것) 나중에 스스로 그것이 ‘장난질’이었음을 밝힘으로써 일부 포스트모더니즘 인문학자들을 불쾌하게 한 적이 있다. 그리고 아예 책을 하나 써서 과학을 함부로 남용하는 짓을 하지 말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앨런 소칼, 장 브리크몽 지음, 이희재 옮김, 󰡔지적 사기 (Fashionable Nonsense)󰡕, 민음사, 2000.)

제국이라는 말만 들어도 체내의 아드레날린 농도가 갑자기 높아지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정의감과 저항의 정신은 높이 살만하다. 과학에 많은 영토를 빼앗긴 철학이 반격을 시작했다. 늘 하던 방식대로 한 것이다. 조용히 깊게, 그리고 끈질기게, 뭐냐고 묻는 것이 철학 아니던가. “과학이라는 게 뭔가?” 감연히 과학을 해부해 보고 더 나아가 해체를 시도했다. 그리하여 철학은 과학의 영토에 결코 합병되지 않을 새로운 영역인 ‘과학철학’을 개척했다. 그곳 왼쪽 끝 동네 사는 소수의 사람들은 과학이라는 제국을 찬찬히 들여다보니 사실은 다른 나라와 전혀 다를 바가 없어 지식의 세계가 본질적으로 무정부 상태더라고 ‘폭로’했다. 나름 힘들여 내린 결론인데 과학 제국의 시민들에게 간단히 무시되었다. 다음 선수는 사회학자들이었다. 그들은 제국 시민들의 단체 행동에 주목했다. 그리고 ‘과학사회학’이라는 영토를 개척했다. 결론은 역시 비슷하다. 제국의 시민들이 다른 나라 시민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 이것은 그리 간단히 무시될 수 없었다. 제국의 시민들은 이미 그것을 스스로 느끼고 알고 있었던 것이다.

확실히, 인간의 지식과 정신의 세계는 넓고 넓어 과학이라는 제국도 하나의 제국일 뿐이다. 사람들은 과학에 무관심하고 무지하더라도 이리저리 갈리고 모이면서 아무 일 없이 잘 살아 갈 수 있다. 과학 제국은 일정한 공물(貢物)만 낸다면 딴 나라 사람들에게 혜택을 나누어 주며 별로 간섭하지 않는다. 오히려 알고 보면 재미는 좀 떨어지지만 똑같이 희노애락 느끼며 사는 사람들이 있는 곳, 아름다움과 신기함과 신비스러움이 가득한 곳, 우주와 인간과 자신의 존재를 돌아보게 하는 곳이라며 여행을 오라 손짓한다. 개인관광, 단체관광 모두 가능하고 원하면 가이드에 통역까지 붙인단다. 한 번 가볼 만하지 않을까. 물론 미리 공부 좀 해 가면 여행의 기쁨은 배가된다.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예컨대, 우주의 역사를 통째로 이렇게 접근해 보는 것은 어떨까. 태초에 떨림이 있었다. 그 떨림이 폭발하여 모든 것이 생겼다. 만물은 원자로 이루어졌다. 그 중 어떤 원자들이 모여 인간이 되었다. 그 인간이 태초의 그 떨림을 알게 되었다! 나머지는 혼자 가만히 생각해 보자. 그리고 여행을 떠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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