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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실크로드의 바른 이해 작성자 정수일
파일 조회수 766
실크로드의 바른 이해
 
 
 

실크로드의 바른 이해

 

 

정수일   (사)한국문명교류연구소 소장

 

 

 

우즈베키스탄의 고도 히바의 아찬카라 광장 한쪽 벽에는 'The Silk Road

 Project'란 제하의 대형 '실크로드' 지도가 걸려있다. 이 지도에 그려진 실크로

 드는 서쪽 로마에서 우즈베키스탄의 부하라와 중국의 시안(西安)을 지나 각각

 베이징과 상하이에서 길을 멈춘다. 그런가 하면 우리네 백과사전이나 교과서,

 그리고 매스컴에서 내린 실크로드 정의를 보면 자구(字句)는 좀 다르지만 한결

 같이 내륙 아시아를 횡단하는 고대 동서 교역로(통상로)라는 것이다. 한술 더

 떠서 우리의 총리 한 분은 독일에서 열린 한 국제행사에서 중국으로부터 지중

  해까지 이르는 ‘동서교역로를 독일 지리학자 리흐트호펜(F. Richthofen)은 비

 길이라 명명’했다고 역설한다. 그러다보니 한반도는 물론, 북방 유라시아나

 프리카, 라틴아메리카는 실크로드와 무관한 존재가 되고 만다. 외국 학계의

 해도 이와는 진배없다. 다들 실크로드하면 일본 NHK가 만들어낸 30부작 ‘실

  로드’ 영사물을 떠올리는데, 그 역시 같은 맥락이다. 요즘 '한국인의 안방'이

 고 일컫는, 그래서 큰 관심을 모으고 있는 이른바 '신실크로드' 도 이 틀에서

 도는 개념이다. 요컨대, 이것이 130여년 전 '실크로드'란 말이 생겨난 이래

까지 마냥 아성처럼 지켜온 통념이다.

     

과연 그럴까 ? 이것이 실크로드에 관한 바른 이해일까 ? 한번 짚어보자. 사실

실크로드란 단순히 내륙 아시아를 오가는 행상들의 장사 길이 아니라, 인류문

명의 교류가 진행된 통로를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문명은 어디서 어떻게 창출

되든지 간에 정형화(定型化)된 구조이면서 동시에 부단히 이동하는 실체이다.

그 공간적인 이동이 곧 교류이고, 그 교류의 길이 바로 실크로드이다. 따라서

실크로드는 인류문명의 이동되기 시작한 때부터 생겨났으며, 지금으로부터 약

3천년 전에는 그 가동이 가시회되었다. 줄곧 낙타나 말, 범선 같은 교통수단에

의해 지탱해 오던 실크로드는 18세기에 이르러 근대적인 교통수단의 등장으로

인해 일대 변신을 일으킨다.

 

1769년 프랑스의 퀴노(N.Cugnot)가 증기기관을 동력으로 하는 자그마한 목제

3륜자동차를 발명한 것이 그 변신의 계기이다. 톡탁거리면서 몇 걸음씩 내딛는

이 하찮은 '요물'은 실크로드 역사에 일대 혁명을 불러왔다. 개량을 거듭하던

끝에 마침내 19세기에 버스가 만들어진 데 이어 기차와 비행기, 기선이라는 엄

청난 교통수단이 도입됨으로써 지구는 육 ․ 행 ․ 공의 입체적 교통망으로 뒤덮

이게 되고, 그에 따라 교류의 내용과 방도는 크게 달라진다. 그래서 18세기부터

오늘에 이르는 약 3백년 동안의 실크로드는 분명히 전통적인 구각(舊殼)을 벗

어나 신형의 문명교류 통로, 즉 '신실크로드'로 면모를 새로이 갖추게 된 것이

다. 이렇게 보면 '신실크로드'를 마치 오늘날에 와서 생겨난 무슨 '철도의 길'이

니, '오일의 길'이니, '경제의 길'이니 하고 운운하는 것은 언필칭 비역사적인 단

견이고 오견임을 알 수 있다.

 

전통적 실크로드건 현대적(신) 실크로드건 간에 실크로드는 인류역사의 전개과

정에서 실로 지대한 역할을 수행해 왔다. 그 역할은 우선, 문명교류의 가교역할

을 한 것이다. 문명의 발달은 교류에 크게 의존하는데, 그러한 교류를 실현하려

면 반드시 가교구실을 하는 공간적 매체가 필요하다. 그 매체가 바로 실크로드

이다. 다음으로, 실크로드는 세계사 전개의 중추적 역할을 감당해 왔다. 문명교

류의 통로인 이 길을 따라 일련의 세계사적 사변들이 일어나고 수많은 민족과

국가들이 흥망성쇠를 거듭하면서 인류역사는 오늘로 이어져 왔다. 이 길이 없

었던들 세계사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길 위에서 내

노라하는 영웅호걸들의 역사의 지휘봉을 휘둘렀다. 끝으로, 그 역할은 세계 주

요 문명의 산파역을 담당한 것이다. 원래 문명의 탄생과 발달은 교통과 불가분

 의 관계에 있다. 교통의 불편은 문명의 후진을 초래하며, 교통의 발달 없이 문

 명의 창달이나 전파는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이 길을 따라 크고 작은 숱한 문명

 이 싹트고 꽃을 피웠던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실트로드에 관한 인간의 이해는 일시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부단한 심화과정, 즉 개념의 확대 과정을 걸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일

찍이 리흐트호펜은 중국을 답사(1869~72년)하고나서 5권으로 된『중국』(1877

년)이란 책을 썼다. 그 1권 후반부에서 중국으로부터 중앙아시아의 트란스옥시

아나(Transoxiana, 시르강과 아무강 사이 지역) 지방을 경유해 서북 인도로 수

출되는 주요 교역품이 비단이었던 사실을 감안해 중국으로부터 서북 인도까지

의 이 교역로를 독일어로 '자이덴슈트라센'(Seidenstrassen), 즉 '실크로드'라

고 불렀다. 이것이 '실크로드'란 이름의 단초이다. 이렇게 보면 리흐트호펜이

중국으로부터 지중해에 이르는 '동서교역로'를 실크로드라고 명명했다는 발언

은 착각임이 자명하다. 이것이 이른바 실크로드 개념 확대의 첫 단계인 중국-인

도로 단계이다. 그러다가 20세기 초 서세동점(西勢東漸)에 편승한 서방의 탐험

가들과 고고학자들에 의해 중국 비단 유물이 멀리 지중해 동안에 자리한 시리

아의 팔미라(Palmyra)에서까지 발견된 점을 고려해 1910년 독일의 동양학자 헤

르만(A. Hermann)은 이 비단 교역의 길을 시리아까지 연장한다. 그런데 이 길

은 주로 동서에 펼쳐진 여러 사막 속에 점재하면서 비단 유물을 간직하고 있는

오아시스들을 경유하기 때문에 일명 '오아시스로'(Oasis Road)라고 부른다. 이

것이 이른바 실크로드 개념 확대의 둘째 단계인 중국-시리아로 단계이다. 아직

까지도 실크로드를 중국에서 지중해까지 이어진 교역로로 보는 견해나 히바의

실크로드 지도는 백여년 전에 나온 이 고루한 개념을 여과 없이 그대로 답습한

것이다.

 

연구가 심화됨에 따라 실크로드의 개념은 계속 확대된다. 2차 대전 후에는 이

오아시스로와 더불어 문명교류의 통로로서 그 북쪽에 초원로(Steppe Road)가,

그 남쪽에 해로(Sea Road)가 동서를 횡단하고 있음이 확인됨으로써 실크로드

개념은 동서 3대 간선으로 확대된다. 동서뿐만 아니라, 적어도 다섯 개의 지선

이 남북을 종단하고 있음도 밝혀졌다. 이것이 이른바 개념 확대의 셋째 단계인

3대 간선단계이다. 비록 이렇게 동서남북 종횡으로 확대는 됐지만, 아이러니하

게도 이 길들의 서단은 로마나 지중해, 서유럽이고, 동단은 중국의 시안이나 동

남해안, 화북으로 설장하고 있다. 한마디로, 인류문명 교류의 통로인 실크로드

를 이렇게 유라시아의 구대륙에만 국한시키고 있다. 안타깝게도 이것이 작금

거의 모든 국내외 학계가 여전히 애틋하게 연연하고 있는 실크로드의 통념이

다.

 

그런데 이젠 그러한 통념에 더 이상 안주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충분한 역사적

전거에 바탕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늦어도 15세기 말경부터는 콜

럼버스(C. Columbus)나 마젤란(F. Magellan) 등 항해가들에 의해 구대륙과 '신

대륙' 간에 해로가 개척되었으며, 그 길을 따라 중남미의 은이나 옥수수, 감자,

고구마, 낙화생, 담배, 해바라기가 구대륙에 유입되고, 구대륙(중국)의 비단이

나 자기가 그곳으로 실려 갔다. 그래서 일찍이 신 ․ 구대륙 간에는 이른바 '태평

양 비단길', '수은의 길'을 통한 '대범선(大帆船) 교역'이 진행되었다. 이것이 바

로 우리가 주창하는 실크로드 개념 확대의 네 번째 단계인 환지구로(環地球路)

단계이다. 이러한 제반 사실은 15세기를 기해 문명교류의 통로인 실크로드(해

로)가 구대륙(유라시아)에서 '신대륙'(라틴아메리카)으로 이어졌음을 입증한

다. 따라서 실크로드의 개념은 종래의 구대륙 한계를 벗어나 지구 전체를 아우

르는 환지구적 통로로 확대되어 마땅할 것이다.

 

물은 괴여있으면 썩는 법이다. 학문도 마찬가지다. 이젠 통념에 도전장을 내밀

어 그릇됨을 바로잡아야 할 때가 왔다. 아직 그 누구도 감히 내밀지 못하는 도

전장, 우리가 솔선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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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재단에서 발행하는 2010년 4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북한인권'과 보릿고개
과학의 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