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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조선일보>4000년 전 황하강 유역 땅굴 주거양식 '천정요원' 작성자 한국타밀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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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4000년 전 황하강 유역 땅굴 주거양식 '천정요원'
 

황하에 살어리랏다, 중원의 지붕 없는 박물관 '싼먼샤(三門峽)기행'

  • 미디어취재팀 김종민 기자

  • 입력 : 2013.06.13 17:55 | 수정 : 2013.06.14 11:03

    4000년 전 황하강 유역 땅굴 주거양식 '천정요원'
    춘추시대 곽국의 수장 유물 그대로 관람
    노자가 함곡관에서 도덕경을 집필한 까닭은?

    싼먼샤(三門峽)는 중국 허난성과 산시성(陝西省)사이, 황하 중류에 있는 협곡이다. 쿤룬산맥에서 시작된 황하가 산둥성으로 가는 14320리 중 가장 험난한 곳이기도 하며 대륙의 영웅들이 천하를 차지하기 위해 피를 흘렸던 중원이기도 하다.
          
    중화민족문명 발원지 가운데 하나요, 역사적으로 장기간 동안 정치, 경제, 문화 중심지였던 샨먼샤가 반 만 년 이상을 품어왔던 중국의 역사는 어떤 모습일까?
    병마용의 도시 서안과 베이징 사이에 위치한 삼문협. 그 옛날 대륙의 중원이라 불리는 지역이다. (네이버 두산 백과 사전 사진 인용)

    병마용의 도시 서안과 베이징 사이에 위치한 삼문협. 그 옛날 대륙의 중원이라 불리는 지역이다. (네이버 두산 백과 사전 사진 인용)

    4000년 전 황하유역 동굴주거방식, 묘상촌(廟上村)
    "멀리서 보면 나무만 무성하고 마을은 보이지 않는데, 마을에 들어서도 집은 보이지 않네. 차는 지붕 위로 다니고, 웃음소리는 들리는데 사람그림자는 보이지 않는구나"
    위의 민요는 4000년 전 황하유역 동굴주거방식인 천정요원의 풍경에 대한 가장 적적한 묘사다. 20세기 초, 루돌스키라는 독일인의 책에 의해 처음으로 알려진 천정요원은 평평한 지면에 네모난 굴을 파고 다시 굴의 네 면을 파서 방을 만드는 독특한 중국 민간건축양식이다. 특히 삼문협 일대에서 천정요원이 가장 집중된 곳이 있는데 묘상촌이라 부른다.
    천정요원은 지상에서 계단을 통해 내려가는데 가이드를 따라 들어가니 6.7m 지하 공간 중아에 나무를 심어 수툐유실을 방지하고 있으며 사면에 있는 주거공간은 효율적으로 구성돼 있다.
    4000년전 황하지역 전통주거방식 '천정요원'

    4000년전 황하지역 전통주거방식 '천정요원'

    황토 속에 있는 천정요원은 여름엔 실외 온도보다 10도 정도 낮고 겨울에는 15정도 높아 일년 내내 적정온도를 유지한다. 기자가 방문한 날도 실외온도가 30도가 훌쩍 넘었으나 천정요원 안은 시원했다.
    또한 천정요원에서 판 우물은 사람과 가축의 식용수로 쓰이고 배수구도 따로 파서 침수에 대비하고 있다. 삼문협 일대의 천정요원이 가능한 것은 이곳의 지리적 환경이 천연적으로 강우량이 적은 건조 지역이기 때문이다.
    가이드는 "황토에서 성장하는 식물은 미량원소가 대량 함유돼 있어 혈관질병을 예방하고 지방의 누적과 장기의 노화를 방지해 이곳에 사는 주민들이 대체로 장수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인지 묘상촌 주변의 노인들이 마치 청년들처럼 마을을 위해 일하고 있는 모습을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병마용보다 오래된 거마갱  '괵국박물관'
    괵국은 춘추시대 말엽에 샨먼샤에 있던 작은 나라다. 진나라에게 내물을 쳐 먹은 우왕이 길을 내주는 바람에 함께 사라진 나라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순망치한(脣亡齒寒)의 유래가 여기서 시작된다. 산먼샤에는 이 괵국의 유물을 전시해 놓은 괵국박물관이 있다. 아주 작은 나라였음에도 불구하고, 발견된 유물의 양은 엄청나서 전시관도 3층에 이른다.
    곡국의 박물관은 실제 거마갱의 발굴 위치에 세워졌다.

    곡국의 박물관은 실제 거마갱의 발굴 위치에 세워졌다.

    특히, 발견된 유물 중 거마갱(車馬坑)이란 것이 유명한데 박물관도 발견된 갱 위에 그대로 지어져있다. 거마갱이란 중국의 고분에서 수레와 말을 함께 묻는 수갱을 뜻한다. 당시에는 높은 신분인 자의 무덤에 수레와 말을 같이 장사지내는 풍습이 있었는데 보존상태가 매우 우수해 수레의 바퀴 살 하나하나까지 살펴볼 수 있다. 3천년을 훌쩍넘은 거마갱은 그 유명한 진시황의 병마용보다 앞서 만들어진 것으로 역사적 의의가 깊다.     
    중원의 관문, 함곡관(函谷關)
    함곡관은 중원의 관문이다. 동쪽의 중원으로부터 서쪽의 관중으로 통하는 유일한 전략적 요충지이기에 대륙의 영웅들은 이곳을 두고 서로에게 칼을 거눴다. 이곳은 동쪽 8km에 걸친 황토층의 깊은 골짜기로 돼있고, 절벽이 깍아지른 듯 솟아있다. 벼랑위의 수목이 햇빛을 차단하고 고 모양이 함처럼 깊이 깍아 세워져 '함곡관'이란 이름이 생겼다.
    34.3m의 노자상을 바라보면 당의 국교였던 사실이 실감난다.

    34.3m의 노자상을 바라보면 당의 국교였던 사실이 실감난다.

    함곡관은 주변이 모두 거친 산맥이나 절벽이기에 '한 사람이 막아서면 만 사람이 지나갈 수 없다'는 말이 유래되기도 했으나 맹상군이란 재주 많은 사람이 닭 울음소리를 내고 손쉽게 지나갔다는 계명구도(鷄鳴狗盜)의 치욕적인 유래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함곡관은 예전 황하를 따라 동으로 가기 위한 유일한 통로로서 지금도 중국에서는 명성이 대단하다.
    노자가 함곡관에서 도덕경을 집필한 사연
    함곡관은 노자가 머무르며 도덕경을 집필한 것으로 유명하다. 노자가 함곡관을 지나가려할 때 관문장인 유희가 통행증 대신 도를 전해달라고 부탁한 것이 5000언으로 이루어진 오늘날의 도덕경이다.
    지금의 함곡관에서는 중원의 치열했던 전투보다 노자의 향기를 더 많이 느낄 수 있다. 함곡관 입구에서부터 34.3m 높이의 금빛 노자상과 일년 12개월 365일을 뜻하는 도덕경상(가로 365m, 세로 12m)은 당나라의 국교였던 노자사상의 위엄을 느낄 수 있었다. 노자의 사당은 지금도 그 당시의 건물과 물건들이 보존되어 있으며 노자를 기리는 향 연기는 끊이지 않고 피어오르고 있다. 반만년 중원의 역사를 품은 샨먼샤의 참모습이 다시 피어나길 기대해본다.

    <연합뉴스>"아랍과 이슬람에 대한 편견을 버려라"
    <조선일보>古代 한국인 모습 왜 둔황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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