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류합시다 [한국문명교류연구소]:::::
 
 
 
 
후원안내
후원회원 신청
CMS회원 신청
후원해 주신 분들
자유게시판
 
  > 회원광장 > 자유게시판
총 623건의 게시물이 있습니다.
제목 모세가 40년 걸린 길을 우린 하루 만에 달렸다: [이집트 여행기 16)] 시나이 탈출기 작성자 이상기
파일 조회수 1386
모세가 40년 걸린 길을 우린 하루 만에 달렸다: [이집트 여행기 16)] 시나이 탈출기
 
다합과 샤름 알 셰이크가 가지는 의미
 
다합의 산
ⓒ 이상기

 
이곳 누에바에서 우리의 최종 목적지 카이로까지는 465㎞ 떨어져 있다. 우리식으로 따지면 5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지만, 이곳의 상황은 전혀 다르다. 10시간은 걸릴 거라고 한다. 중간 중간 검문소가 있는데, 이들이 검문이라는 이름으로 차량 운행을 한없이 지체시키기 때문이다. 우리의 1차 목적지는 다합(Dahab)이다. 누에바에서 70㎞ 정도 떨어져 있으니 한 시간 정도 걸릴 예정이다.
 
다합은 아카바만의 대표적인 어촌 마을이었으나 지금은 다이빙과 스노클링을 즐기는 관광지로 변신했다. 이곳은 모세 일행이 이집트를 떠나 이스라엘로 가는 길에 잠시 머물렀을 가능성이 있는 마을이다. 성경에는 마을 이름이 디-잡(Di-Zahab)으로 나온다. 옛날 대상들은 다합에서 와디 나습 (Wadi Nasb) 고개를 넘은 다음 시나이 산 아래 있는 카타리나 수도원에서 하루를 머물곤 했다고 한다.
 
샤름 엘 마야 항구
ⓒ 이상기

 
그러나 길이 다합 항구에서 멀리 떨어진 내륙으로 나 있어 바다와 항구를 보지는 못했다. 이곳 주유소에서 기름도 넣고 잠시 휴식을 취하고는 다시 샤름 엘 셰이크(Sharm el-Sheikh)를 향해 출발한다. 다합에서 샤름 엘 셰이크까지는 80㎞로 한 시간 남짓 걸린다. 중간에 샤리라(Sharira) 고개가 있는데, 이곳의 경치가 상당히 좋은 편이다. 샤름 엘 세이크는 시나이 반도 최대의 관광도시다. 항구로서 좋은 조건인 만(灣: Bay, Sharm)을 가지고 있어 페리가 운행되고, 국제공항도 갖춰져 있다. 페리로는 아카바와 후루가다로 갈 수 있고, 비행기로는 카이로, 알렉산드리아, 룩소르, 후루가다로 갈 수 있다.
 
그리고 나마 베이(Naama Bay) 지역에 훌륭한 해안을 가지고 있어, 해수욕은 물론이고 스쿠버 다이빙과 스노클링을 즐길 수 있다. 우리는 시 외곽의 샤름 엘 마야(Maya) 지역 휴게소에서 잠시 쉰다. 항구 쪽으로 큰 페리도 보이고 작은 요트들도 보인다. 그런데 이곳의 파란 바다. 하얀 배, 황토색 흙, 초록색 식물이 묘한 대조를 이룬다. 아직 정비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인지 풍요로움보다는 황량함이 느껴진다. 현재 샤름 엘 셰이크의 인구는 35,000명이다.
 
애급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는 모세의 행로
 
수에즈만과 아카바만으로 둘러싸인 시나이 반도
ⓒ 이상기

 
우리는 이제 시나이 반도의 서쪽 수에즈만을 따라 수에즈로 올라갈 것이다. 샤름 알 셰이크에서 1차 목적지 수에즈까지는 370㎞고, 최종 목적지 카이로까지는 490㎞다. 여기서 잠깐 모세가 시나이 반도를 어떻게 넘어 유다 땅으로 돌아갔나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집트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시대를 연 획기적인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 내용이 성서 출애굽기에 잘 나타나 있다.
 
모세는 이집트 신왕국 시대 이집트에서 태어났다. 나이가 마흔 살이 되었을 때, 그는 이집트에서 학대받는 히브리 노예들을 보호하려다가 이집트인을 죽였다. 그 때문에 히브리인들을 데리고 이집트를 도망쳐 이스라엘 땅으로 향한다. 그러나 모세가 찾아간 곳은 가나안 땅이 아니고 아카바만의 북쪽, 사해 동쪽 땅이었다. 당시 그곳에는 에돔족과 롯의 후손인 모압족이 살고 있었다.
 
시나이 반도를 건너 가는 모세의 행로
ⓒ 이상기

 
모세가 편안한 바닷길을 따라 가나안 땅으로 가지 않고 고통스러운 사막길을 택한 것은 하느님의 뜻 때문이다. 바닷길을 따라 팔레스타인으로 가면 열흘이면 된다. 그러나 그 길로 가면 전쟁을 겪게 되어, 다시 이집트로 되돌아오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모세는 시나이 반도를 돌고 돌아 아카바의 도시 에지온 게베르(Ezion Geber)에 도착한다. 무려 40년이나 걸린 고행길이었다. 그리고는 모압의 평원을 지나 느보산(Mount Nebo)에서 120년 생을 마감한다.
 
나일강과 시나이 반도를 건너는 모세의 출애굽기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사건이 두 가지다. 하나는 바다를 건너 이집트 군대를 따돌리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시나이산에서 10계명을 받는 일이다. 이 두 사건은 정말 극적이어서 영화와 연극의 단골 소재가 되고 있다. 그러면 물이 갈라지게 해서 이집트군을 따돌린 그 바다가 어디일까? 국내에 번역된 성서에는 분명 홍해(Red Sea)라고 적혀 있다.
 
갈대 바다로 알려진 비터 호
ⓒ 이상기

 
그런데 사실은 그 바다가 홍해가 아니라 갈대 바다(Reed Sea)이다. 왜냐하면 히브리어 Yam Suph는 Sea of Reeds이기 때문이다. 독일어 성서도 '갈대 바다에서의 구조(Rettung am Schilfmeer)'라고 되어 있다. 그리고 그 갈대 바다라면 분명 내륙의 또는 민물 바다가 되어야 한다. 일부 연구자들은 이 갈대 바다가 나일 델타의 동쪽 지류 이스마일리아를 따라 형성된 거대한 비터호 (Bitter Lake)라고 주장한다. 이 호수가 갈대가 우거진 습지를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터호로는 지금 수에즈 운하가 지나간다. 성서의 출애굽기 13장 18절에서 하느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광야를 지나 갈대바다로 가는 우회로를 열어준다. 그리하여 그들은 광야의 끝 에담(Etam)에 진을 친다. 그리고 계속 나가, 바다에 가까운 비하히롯 근처 바알-제폰(Baal-Zefon) 앞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파라오 군대가 가까이 왔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걸 보고 깜짝 놀라 소리 지르며 모세를 원망한다. 이때 바로 하느님의 도움이 펼쳐진다.
 
니콜라스 푸생이 그린 "바다를 건너는 이스라엘 백성들"
ⓒ 이상기

 
"모세가 팔을 바다로 뻗치자, 야훼께서는 밤새도록 거센 바람을 일으켜 바닷물을 뒤로 밀어 붙여 바다를 말리셨다. 바다가 갈라지자 이스라엘 백성은 바다 가운데로 마른 땅을 밟고 걸어갔다. 물은 그들 좌우에서 벽이 되어 주었다. 이집트인들이 뒤쫓아 왔다. 파라오의 말과 병거와 기병이 모두 그들을 따라 바다로 들어섰다. […] 모세는 팔을 바다 위로 뻗쳤다. 날이 새자 바닷물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이집트인들은 물결을 무릅쓰고 도망치려 했으나 야훼께서 이집트인들을 바다 속에 처넣으셨다." (출애굽기 14장 21-27절)
 
수에즈운하까지 가기가 그렇게 힘들다.
 
검문소 주변 풍경
ⓒ 이상기

 
샤름 엘 셰이크에서 수에즈까지는 수에즈만을 왼쪽으로 끼고 북서방향으로 달린다. 우리는 엘 투르(El Tur)와 파라운(Faraun)을 거쳐 수에즈로 갈 것이다. 이들 두 도시에는 온천이 있는 것으로 되어있지만 온천을 즐길 시간 여유가 없다. 또 1시간 마다 검문소를 하나씩 만나는데, 이곳에서는 30분 내지 1시간 지체하기 일쑤다. 도대체 관광객을 붙들어두는 이유를 모르겠다.
 
우리는 시나이 반도를 넘으며 모두 다섯 군데 검문소를 지났다. 현지 가이드가 검문소로 가서 군인들과 뭐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모든 일이 쉽게 풀리지는 않는다. 우리는 황량한 사막에서 무작정 기다려야 한다. 이들 검문소에서 허비한 시간만 해도 3시간은 되는 것 같다. 정말 짜증난다. 그나마 나은 곳은 야자나무도 보이고 새들도 있어 덜 무료한 편이다.
 
검문을 기다리는 유조차들
ⓒ 이상기

 
이들 검문소를 지나 버스가 운행을 하면 주변에 보이는 풍광이 그나마 시간을 잘 가게 한다. 중간 중간 바다가 보이고 석유 시추시설에서는 불이 뿜어져 나오기도 한다. 시나이 사막에서도 석유가 나오는 것이다. 삼림이 우거지고 환경이 좋은 곳보다는 이처럼 척박한 사막에서 석유가 나오는 이유가 뭘까? 사는 환경이 나쁘니까 그런 혜택이라도 주는 걸까?
 
5시 30분쯤 되니 사막에서 땅거미가 지기 시작한다. 도로에 이정표도 없어 도대체 우리가 어디쯤 가고 있는지도 알 수가 없다. 6시가 되자 어두워진다. 사막에서의 밤은 더 적막하고 음산하다. 마지막 검문소에서 또 다시 시간을 지체하고 6시 30분이 되어서야 검문소를 모두 통과한다. 여기서 1시간쯤 달려 우리는 제대로 된 트란짓(Transit) 휴게소에 잠시 들어가 휴식을 취한다. 이곳에서야 비로소 이집트를 느낄 수 있다.
 
검문소 야경
ⓒ 이상기

 
기념품점에 아라베스크 문양이 보이고,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등이 진열되어 있다. 우리가 너무 피곤해선지 기념품이 눈에 들어오질 않는다. 또 카이로나 알렉산드리아에 가면 더 좋은 기념품들을 볼 수 있을 텐데 여기서 시간을 낭비할 필요는 없다. 한국인 가이드가 이 근방이 우윤 무사(Uyun Musa)인데, 그곳에 모세의 샘(Springs of Moses)이 있다고 말한다. 무사는 모세의 아랍식 표현이다.
 
성서 <출애굽기>에는 마라(Mara)의 샘으로 나온다. 마라는 히브리어로 쓰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모세는 이 쓴 물에 나뭇가지를 던져 물을 달게 만든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시나이 반도로 들어와서 겪게 되는 첫 번째 시련이었다. 
 
"그들은 사흘 동안 가면서도 물을 만나지 못하다가 마라에 다다랐다. 그러나 그곳 물은 써서 마실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고장을 마라라고 불렀다. 백성들은 모세에게, 무엇을 마시라고 하는 말이냐고 하면서 투덜거렸다. 모세가 야훼께 부르짖자, 야훼께서 나무 한 그루를 보여주셨다. 그 나무를 물에 던지니 단 물이 되었다." (15장 22-25절)
 
기자에 도착하니 파김치가 되었다.
 
수에즈 운하 아래로 지나는 지하 터널
ⓒ 이상기

 
아윤 뮤사에서 수에즈 운하까지는 1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어느새 우리가 지하 터널 같은 곳을 지나간다. 가이드 말이, 이 터널 위로 수에즈 운하가 지나간다는 것이다. 드디어 우리가 고대하던 수에즈 운하에 왔는데, 물은 보이지 않고 콘크리트 천정만 보인다. 우리는 그래도 이곳 휴게소에서 수에즈 분위기라도 느껴보자고 가이드에게 제안을 한다. 그는 우리를 휴게소로 데리고 가서 지도와 조형물을 가지고 수에즈 운하에 대해 설명한다.
 
옛날에는 수에즈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있었는데, 지금은 군사적인 이유 때문인지 관광객들에게 그곳을 폐쇄했다고 한다. 또 우리는 밤늦게 이곳에 도착해, 주변에서 물이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었다. 이제 모든 걸 포기하고 다시 차에 올라 잠시 휴식을 취한다. 차는 3번 고속도로를 타고 빠르게 달린다. 오래간만에 제 속도를 낸다.
 
카이로 시내 가는 길
ⓒ 이상기

 
한 시간 반쯤 지난 것 같은데 밖에 도시의 불빛이 보인다. 카이로 외곽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꿈에 그리던 우리의 목적지 카이로다. 그런데 알고 보니 우리가 묵을 호텔이 카이로가 아닌 기자에 있었다, 기자는 카이로의 서쪽에 나일강을 마주하고 있는 도시로, 옛날에는 죽은 자들을 위한 땅이었다. 그런데 18세기 초부터 피라미드가 관광지가 되면서 그들을 대상으로 한 관광산업이 번창하게 되었고, 도시가 형성되었다. 그동안 기자는 인구가 360만이나 되는 대도시가 되었다.
 
우리는 밤 10시 40분이 되어 정말 늦은 저녁을 먹었다. 말이 저녁이지 밥맛이 있을 리 없다. 피곤도 하고 음식도 썰렁하고. 먹는 둥 마는 둥 하고는 호텔로 향한다. 호텔에 들어가니 밤 11시 50분이다. 아침 7시에 제리코를 출발 밤 12시가 다 되어 기자의 호텔에 도착했으니 꼬박 17시간을 길에서 보낸 것이다. 말 그대로 파김치가 되었다.
 

타바검문소 직인이 찍히면 안 되는데...: [유럽문명의 원류 이스라엘 이집트 여행기 ⑮]
알렉산더는 간 데 없고, 로마시대 흔적만 남아: 이집트 17 알렉산드리아
비밀번호